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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겨울 평창여행 본문
제철에 찾아야 제 멋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겨울은 뭐니 뭐니 해도 춥고 눈이 와야 제격이다. 백두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은 선자령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앵무새의 천연덕스러운 사람 흉내에 아이들의 웃음은 끊이질 않는다. 이효석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문학 기행은 눈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선물한다. 설국으로 변신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 평창은 즐겁기만 하다. 눈 트레킹에서 욕심은 금물이다선자령 정상에 서면 강릉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설원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는 선자령은 해발 1,157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들머리인 옛 대관령휴게소가 해발 820m인 점을 감안하다면 고도차는 불과 300m 정도. 하지만 옛 대관령휴게소를 시작으로 국사성황당,
새봉전망대, 선자령을 지나 샘터, 국사성황당을 거처 복귀하는 순환 코스는 10.8km에 이른다.
일기가 좋은 날에도 3시간 30분 정도는 소요되는 길이다.
물론 겨울 선자령의 경우 강한 눈보라를 피할 수 없으니 소요시간은 훨씬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눈이 많이 온 뒤에는 어김없이 전국에서 눈 트레킹 인파가 몰려든다. 때문에 눈길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문제는 선자령에서 일출을 볼 욕심에 새벽 산행을 강행할 경우 자칫 스스로 러셀(Russell, 선두에 서서 눈을 쳐내어 길을 다지면서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빨리 소진될 수 있으니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오전 7시경, 옛 대관령휴게소는 선자령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새벽부터 달려온 덕에 배에서는 계속해서 자명종을 울리고 있다.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휴게소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속을 달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중무장하고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갔다. 선자령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인데, 눈이 많이 온 뒷날에는 국사성황당을 지나
새봉전망대로 가는 길이 수월하다.
또 이 구간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다른 코스는 양떼목장을 지나 풍해조림지, 샘터로 가는 구간으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왼쪽으로 양떼목장을 무료 관람하며 걸을 수 있지만 유별나게 바람이 강해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칼바람과 맞서 백두대간에 우뚝 서다
오전 10시가 지나면서 관광버스를 타고 모여든 산악회 회원들로 좁은 오솔길이 가득 찼다.
그 행렬과 함께 눈길 걷기를 즐겨도 좋겠지만 자칫하면 눈보다 앞사람 배낭만 보고 돌아올 수 있으니 가급적 오전 9시 전에 시작할 것을 권한다.
첫발을 내딛은 지 2km가 지나면 KT중계소 철탑 앞에 이른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따귀를 사정없이 때리는 지점이다.
비록 '고통'은 있으나 멋진 전망을 볼 욕심에 많은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빠진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새봉전망대가 있으니 말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서쪽으로는 풍력발전기를, 동쪽으로는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인 시야만큼 가슴도 시원해진다. 동해의 찬바람이 잠자고 있던 허파꽈리까지 깨우는 듯했다.
비상식량과 뜨거운 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2 강한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칫하는 여성 등산객.
3 발걸음이 경건하기까지 한 등산객들.
4 홀로 걷고 있는 등산객의 발걸음이 경이롭다.
오히려 넓은 분지를 걷기 때문에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세차게 불어대는 강풍 탓에 풍력발전기가 있는 분지 지형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금세 눈으로 덮이고 만다.
"소백산 칼바람이 유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선자령 칼바람도 대단하네요."
산악회 대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큰 덩치의 풍차는 이렇게 강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서 있다.
자연과 맞서고 있는 인간의 창조물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거인이 사용할 것 같은 큰 풍차가 한두 대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윙윙거리며 세차게 돌아갔다. 멀리서 볼 때는 풍차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할 정도다.
풍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기 시작한 지 30여 분. 드디어 백두대간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다.
집채보다 큰 표지석이 위용을 과시하듯 중앙에 떡하니 서 있다.
북쪽으로는 곤신봉과 매봉이, 서북쪽으로는 황매산이 자리 잡았다.
산 능선마다 풍차가 바람을 맞으며 우뚝 솟아 있어 밋밋한 겨울 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동쪽으로는 시퍼런 동해가 펼쳐져 막힘이 없다.
수직하강하면 강릉까지 다다를 기세다. 바람이 찬 관계로 정상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내 하산 길을 재촉했다.
안전한 하산을 위해 등산길과 같은 구간을 선택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장난 삼아 비료 포대를 깔고 눈썰매를 타도 좋겠다.
중년 부부가 서로 타겠다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 순간만큼은 아이의 모습이다. 단, 전방 시야가 확보된 곳에서 썰매를 타야 한다.
정상에 서서 천하를 얻은 제왕처럼 군림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이효석의 흔적을 따라 겨울에 찾은 봉평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겨울에 찾은 메밀밭에는 소금을 뿌린 것 같은 메밀꽃은 없었다.
다만 온 세상이 순백의 동화 속 나라로 이사를 온 듯 이불솜을 흩뿌려놓은 것같이 포근한 모습이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교과서에 수록돼 국민 대다수가 익히 알고 있는 명작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해발 700m 평창군의 봉평이다. 특히 이곳은 이효석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 등이 있어 문학 여행을 떠나기에 더욱 좋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봉평에는 그의 흔적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특히 소설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 동이와 허생원이 다투던 충주집 등을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재탄생시켰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덧 소설 한 편을 모두 읽은 기분이 든다.
이효석문학관에는 선생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중에는 선생이 직접 사용하던 펜과 친필 원고도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폐교, 평창무이예술관
이효석문학관 인근에 위치한 평창무이예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독특한 예술 전시관이다.
이곳은 단순히 작품만 감상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작가들의 작업 활동을 볼 수도 있고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널찍한 출입문을 들어서면 조형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운동장으로 보이는 너른 마당은 야외 조각공원으로 탈바꿈했다.
1백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폐교의 정취가 더욱 짙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은 삐거덕거리며 울어댄다.
복도에는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작품과 첫눈에 웃음이 터지는 해학적인 작품까지 걸려 있다.
교실이었던 공간은 판화실, 조각실, 서예실 등으로 변신했다.
화장실 벽면은 갖가지 상상력을 총동원한 듯 낙서의 수준을 넘어 멋진 벽화로 탄생했다. 또 다른 전시실에는 캔버스마다 메밀꽃이 가득하다.
한겨울에 즐기는 메밀밭 풍경화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복도 끝자락에는 각종 소품들을 판매하는 전시관도 있다.
물론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압화를 만들 수도 있다.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체험 시간이 소요된다.
체험 비용은 1만원 선이다.
'새는 머리가 나쁘다'라는 편견을 버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메들리 삼매경에 빠진 앵순이의 노래는 끝이 없다.
"이 녀석이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예요."
앵순이와 그의 친구들을 훈련시키는 자칭 교장선생님의 말이다. 말하는 앵무새와 그렇지 않은 새까지 1백여 마리는 족히 돼 보인다.
고사리손에 좁쌀과 해바라기 씨앗을 담아 앵무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엄마 무서워요~"라며 잔뜩 겁을 먹은 아이는 어느새 앵무새와 친구가 돼 어깨를 내어준다. 앵무새 공연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하다. 앵무새가 묘기를 성공하면 아이들보다 더 신기하다는 듯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교장선생님께 배운 대로 앵무새를 향해 "하이파이브"를 외치자 앵무새도 날개를 들어 맞장구를 친다.
어쩜 이렇게까지 훈련을 시킬 수가 있을까.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새는 머리가 나쁘다'라는 고정관념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관람 요금은 중·고생 이상 6천원, 어린이 5천원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2 이효석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당나귀.
3 한국앵무새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새 모이를 줄 수 있다.
4 이효석문학관에 설치된 이효석 동상.
대관령 양떼목장에서는 2월 말까지 넉넉한 눈을 구경할 수 있다.
대관령 정상에 위치한 이곳은 태백산맥의 위용과 목장 산책로의 아기자기한 모습까지 한눈에 즐길 수 있어 더욱 운치 있다.
광활한 눈밭을 바라보고 있자면 알프스의 어느 목장에 온 듯한 착각에 신들린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특히 눈이 온 다음날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다.
목장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양에게 건초 주기 체험을 해봐도 좋겠다.
양들을 보다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흥미진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건초 주기 체험 요금은 대인 3천5백원, 소인 3천원, 5세 이하는 무료다. 차량은 지정 주차장에 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2 겨울에 더욱 진미를 느낄 수 있는 황태해장국.
3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먹는 라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선자령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구 대관령휴게소). 서울 기점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까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오전 6시 32분부터 오후 8시 5분까지 운행.
●이효석문학관강원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효석문학길 73-25. 서울 기점 영동고속도로 장평IC 진출.
문의 033-330-2700, www.hyoseok.org
●평창무이예술관강원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 58. 서울 기점 영동고속도로 면온IC 진출. 문의 033-335-6700
●한국앵무새학교강원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375-3. 서울 기점 영동고속도로 속사IC 진출.
문의 033-333-8249, www.birdhouse.co.kr
●양떼목장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3리 14-104. 서울 기점 영동고속도로 횡계IC 진출.
문의 033-335-1966, www.yangtte.co.kr
●추천 맛집현지인이 알려주는 평창 맛집은 금천회관(033-335-5103)이다.
외지 손님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 식당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 또한 뒤지지 않는다. 횡계로터리 근처에 있다.
봉평에 메밀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메밀막국수와 전병 가격은 각 6천원 안팎이다.
●여행 문의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753)
여행작가 임운석은…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 업체의 로드플래너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 & 사진 /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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