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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다랑논 길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6. 16. 22:49

 

년을 일궈온 논두렁을 걷다

 

 

 

 

준국서부는 걷기 좋은길을 추천하기 좀 난처한 점이 있다. 일단 이 지역은 너무 넓다.

윈난만 해도 광활하고 지대가 높고 계곡은 깊다.

보통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며칠씩 가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동차나 열차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아주 가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을 보았다.

멀리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온 도시 사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에서 걸어다니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전통 사회인 중국 서부에서 걸어 다니는 여행자를 딱하게 여긴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은 말할 것도 없고 걷다보면 주민들이 알아서 차를 대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그냥 걷는다'고 하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윈난성 위안양현 신제진에서 마을버스인 빵차를 타고 둬이춘으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타고 이 미니벤은 끊임없이 헐떡이며 가쁜 고개를 넘어간다.

 

 

대한 풍경 앞 요지경

이 차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는 중국 윈난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랑논을 볼 수 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때는 논농사를 위해 물을 대놓앗기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나.

 하여간 한 번 믿어보기로 하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단잠이 들었다.

 한참후 차가 멈추고 내리라 한다.

아침 6시. 아직도 밖은 깜깜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동차 수십 대가 길을 메우고 카메라를 멘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벼랑가 사람들 옆에 위테롭게 섰다.

그러고는 이윽고 숨이 멎을 뻔 했다.

 아직 일출전인데도 어렴풋하게나마 이곳이

 왜 그 유명한 필리핀 바기오의 다랑논과 비교되는지 알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진씨는 "곧 이곳은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록될 겁니다.

그 전에 꼭 한번 와서 사진을 찍고 싶었죠."

비단 진씨뿐 아니라 중국 전역의 사진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듯 했다.

 여기저기서 감탄과 두런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다랑논과 함께 바라 본 일출 30분.

돌아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많던 출사객들은 일출 사진만 찍고 사라진 것이다.

그 황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먼 곳까지 어렵게 와서 풍경의 껍데기만 보고 간다는 말인가?

 홀로 투덜거리며 저 멀리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집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둬이춘은 하니족의 마을이다.

중국 소수민족인 하니족은 청람색을 선호하며, 부녀지들은 가슴장식과 귀고리를 특히 좋아한다.

농경민족으로 논농사와 차를 재배하며 사는데 워낙 고산지대에서 모여 살기에

기계농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마을길을 걷가 보면 거리에서 늘어져 자거나 자기 마음데로 돌아다니는 돼지들을 만날 수 있다.

길옆 하니족 가옥구조는 3층이다. 1층에는 돼지가 살고, 2층에 사람이 산다.

다락방 같은 3층은 창고로 활용한다.

 

 

지와 함께하는 걷기

 윈난 지역의 고산에 사는 사람들의 단백질원은 돼지다.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는 선육 상태로 조리하지 않고 훈제를 한 햄의 형태로 가공해 먹는다. 

 흔히 '윈난 햄'이라 불리는 돼지고기는 염장을 한 후 집안 화덕 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수년을 숙성시킨다.

집안의 곰팡이가 고기에 붙어 아미노산을 분해한다.

하니족 집안에 딸이 태어나면 돼지 한마리를 통째로 훈제해 보관한다.

20년쯤 지나 결혼할 때쯤 창고에서 거내 잔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걷다보니 길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걷기는 한결 편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전에는 그냥 흙길 이었는데 , 비만오면 진창이되어 마을 주민이 현의 도움을 받아 포장한 것이란다.

사실 여행자가 이 오지의 정취를 누리자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길을걷다보면 황토로 마감한 담장이며 공터에 버티고 홀로 늙어가는 벚나무가 정겹기 그지 없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출신인 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세께적인 베스트셀러 <나는 걷는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러운 바람, 구덩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또는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은 이미지와 감각과 향기를 빨아들여 모아서따로 추려 놓았다가,

후에 보금자리로 돌아 왔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고 각각에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멋지고 디테일 한 문장이다.

 

두렁을 걸으며 만나는 비현실적 풍광

 마을 골목을 걸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논두렁을 걸어볼 일이다.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논두렁은 우리네 농촌에 비해 규모가 커서 놀랐다.

논과 논 사이 비탈길은 꽤 높은데 낮은 곳은 1m 정도이고 높은 곳은 2m 가 넘는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모두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모두 인력에 의해 저 거대한 다랑논을 천년가까이 만들어 온 것이다. 

멀리서 그 풍광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이 다랑논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세계자연 유산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일군 '문화유산'이 맞다.

 논두렁을 걸으면 무수한 풍관들과 만나는데 그것이 참으로 비현실 적이다.

논에 댄 물에 비친 사물은 방향과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려면 봄과 가을 두번은 하는게 좋다.

윈난은 보통 3모작이 가능하지만 이곳처럼 지대가 높으면 2모작이다.

어느 때 와도 좋겠지만 이왕 눈에 담고픈 풍경이라면 모내기 하기 전에 오는 것이 더 좋다.

 한참을 걷다보니 배도 고프다. 일몰때까지 걸으면서 풍광을 보려면 요기는 해야 한다.

무작정 다시 마을로 들어갔다.

청바지를 입은 낮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왕 노인은 "전기도 지난해 들어왔어.

 덕분에 텔레비전도 보고 한국 드라마도 봤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청년을 보기란 힘들다.

모두 도회지로 돈 벌러 나갔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여성이 지키고 있는 이 마을의 한달 평균 수입은 우리 돈으로 채 5만원이 되지 않는다.

농약을 살 돈도 없으니 눈물 나는 '유기농 쌀'농사를 짓는 셈이다.

배가 고파서 "먹을것이 없느냐"고 물으니 하얀 쌀밥에 예외 없이 윈난 햄을 넣어 만든 채소 볶음을 금방 내온다.

 맛있게 먹고 값을 치르려 하니 손사래를 친다.

 

난 농촌에서 떠올린 얼굴

나는 올해로 15년째 중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이국적인 위구르 인과 만났고, 칭장고원에서는 라마승을 만났다.

 하지만 윈난의 농촌에서는 리얼리티를 만났다.

우리네 수십 년 전 농촌을 데자뷔처럼 이곳에서 만 났다.

 오늘날 자유무역 협정(FTA)이 횡행하는 신 자유주의 시대에 중국의 9억 농민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9억명 중 2억명은 이미 민공이라는 이름의 도시 일용직이 되었다.

그리고 1억5000만명이 도시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저곡가에 시달리는 윈난 농민의 딸 얼굴에서 공순이로,

가정부로 올라온 서울역 앞 우리네 누이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출처: 이상엽<파미르에서 윈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