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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알바니아 본문
1980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거는 희생을 감수했던 도시가 다시 겪어야 할 절망감과 허탈감이 그 지역 사람이 아닌 내게도 전해졌다.
그날, 알바니아를 떠올렸던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가톨릭과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는 유럽에서 외떨어져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알바니아 사람들의 외로움. 그랬다. 내가 본 알바니아는 유럽대륙 안에 존재하는 고독한 섬이었다.
소외받고, 고통 받았다는 면에서도 알바니아는 광주와 닮은꼴이다. 그런 이유에서 광주는 한국 속의 알바니아, 알바니아는 유럽 속의 광주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과 고립감은 분명 사람의 정서를 파괴하는 아픔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강직한 마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사는 것 또한 인간이 아닌가. 알바니아를 여행하며 수난을 선량함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광주에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한다. '유럽 속 광주' 알바니아 사람들의 이야기다.
- '위키백과 한국어판'
알바니아 마피아: 15세기에 기본 모체가 완성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알바니아에 본거지를 둔 범죄조직이 많으며 미국, 유럽 등지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세계 각국에 퍼졌고 매춘, 마약밀매를 한다. 무지비한 복수와 폭력으로 악명이 높다. 알바니아의 시골 소녀들의 실종에도 이들이 관련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떠도는 정보 요약
한 편의 영화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세다. 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배급망이 가진 엄청난 대중파급력. 힘의 근원은 거기서 시작된다. 이 거대한 힘은 가끔 오해와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이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는 할리우드 영화 중 일부는 백인 이외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기도 하고, 정치적 적대국가에 대한 혐오를 은근슬쩍 또는, 대놓고 보여주기도 한다.
필자처럼 40대 초반인 영화팬들은 중고교 시절 < 람보 > 를 무비판적인 시각으로 극장에서 만났고, 그 영화에 환호하던 시절을 한참 지나서야 숨겨진 '베트남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됐다. 미국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었고, 미국의 군대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다.
왜곡된 미국중심주의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적지 않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시스템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알바니아.
2011년 여름. 그곳을 여행할 것이라고 SNS를 통해 알렸다. 이를 접한 친구와 전 직장동료, 후배들은 나의 알바니아행을 말렸다. "거긴 악랄한 알바니아 마피아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냐"라는 게 공통된 우려였다.
그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할리우드 영화 < 테이큰 > 을 봤다. 영화적 완성도가 높고 낮음을 떠나 어떤 의도를 지니고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영화의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미국 중산층 가정. 철없는 열일곱 딸은 아버지(리암 니슨 분)의 만류를 뿌리치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친구와 프랑스 파리로 놀러 간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문법에 따라 당연한 수순처럼 사건이 발생한다. 알바니아 출신 마피아들에게 딸이 납치되는 것. 이들은 프랑스 경찰도 통제하지 못하는 악랄한 범죄·인신매매조직이다. 10대 소녀들을 마약에 취하게 해 성폭행하고, 은밀한 경로를 통해 그녀들의 처녀성을 거래하려 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알바니아 마피아는 인면수심이다. 폭행과 협박으로 매춘부를 관리하고, 정부기관에 뇌물을 먹이고, 뭔가가 자신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상대의 팔과 다리를 수숫대처럼 꺾어버리거나 총을 난사한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승리하는 법. 리암 니슨은 수백 대 일의 싸움에서도 기죽지 않고, 결국에는 악당으로 설정된 알바니아 마피아들로부터 딸을 구해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 테이큰 > 의 결말.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속편까지 제작돼 개봉했다고 한다.
마피아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상식적으로 한 번만 생각을 해보자.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1960년대 한국처럼 아직도 소달구지가 다닌다. 범죄 집단이 유지될 수 있으려면 그 공간에 투명하지 못한 '검은 돈'이 흘러 다녀야 한다. 조직폭력배나 마피아가 아무 것도 해먹을 게 없는 나라나 도시에 있을 리 만무하다.
알바니아 대부분의 도시에는 범죄 집단 성립의 제1필요조건인 '검은 자본'이 없다. 멀리 가지 말고 한국만 봐도 그렇다. 가장 악랄한 범죄 단체는 모조리 서울에 있다.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투명하지 못한 돈'이 가장 많이 떠돌아다니는 도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농사짓고, 나물 캐서 연명하는 수천 명 인구의 소읍에 조직폭력배가 있다는 소리를 이때껏 들어보지 못했다. 알바니아도 한국과 마찬가지 아닐까. 그게 조직폭력배건 마피아건, 깡패도 사람인데 밥 안 먹고 손가락만 빨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밥 굶는 깡패라니. 듣기에도 웃기지 않는가.
물론 '알바니아 마피아'는 실재한다. 그 행동의 극악무도함에서 이탈리아나 러시아 마피아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검은 돈' 아래에서 해먹을 게 있는 곳으로 떠났다. 한국의 범죄 단체가 서울에서 뿌리를 내린 것처럼, 알바니아 마피아 역시 '피 묻은 돈'이 떠다니는 서유럽의 휘황찬란한 도시로 옮겨갔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그 결론 아래서 친구와 후배, 전 동료들의 걱정을 무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판단이 옳았다. 알바니아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 아래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
색깔이 선명하고 곱다. 기온과 토질, 재배방식의 차이 때문일까?
그곳에서 만난 알바니아 사람들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고, 마피아처럼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나눠주는데 더 익숙해보였다. 게다가 찡그린 표정의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거리의 장사꾼과 아이들도, 교통경찰도, 항구의 보안요원도,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늘 웃는 낯이었다. 그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선량한 무슬림'의 맨얼굴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문예지 < 문학의오늘 >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2011년에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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