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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겨울 설경과 온천여행 본문
아산 현충사 적막의 언덕
12월 8일 토요일 오전,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잠잠했다. 사나흘 동안 내린 눈이 그친 모처럼의 청명한 겨울날이다. 작업실로 향하던 발길을 붙든 것은 아산에서 온 한 통의 전화. '세상 천지가 하얗게 칠해졌네유, 어서 오서유~'라는 아산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자 후배의 여행 권고 전화였다. '시방 현충사 겉은디를 가면 기절초풍하실틴디… 성님, 주말에 멋땀시 일은 하신다고 그러세유, 발길을 돌리면 안되겠슈? 온천장 여관은 지가 잡아둘게유~' 고개를 들었다. 눈이 시렵다. 바람 한 점 없는 메마른 겨울 아침이다. '허허허, 참말로 고맙구먼, 이 성님이 냉큼 달려갈테니 현충사서 만나자고…'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목적지 아산시는 온양과 도고 등이 있는 온천 지역이자 농촌 풍경이 실하게 살아있는 전원 도시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 IC에서 진입하게 되는데, 서울에서는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평택항과 가까워서인지 서평택 IC 근처에 다다르자 차량운반 트레일러 모습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톨게이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문자를 보냈다. '왔다…', 곧 답장이 온다. '한 시간 뒤에 거기서 뵈유…' 눈 덮이 시골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찍고 가면 적당할 시간이다. 너른 들판은 난반사 되는 햇빛을 받아 도저히 생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흰 눈과 일명 공룡알, 볏단을 모아놓은 대형 비닐뭉치 뿐이다.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전봇대 행렬도 인상적이다. 카메라를 꺼내 파인더를 들여다 보아도 당췌 피사체의 실체를 볼 수 없다. 옛날 사진관 아저씨가 파인더에 눈을 대고 오른손에는 플래시나 플래시 작동기를 들고 검붉은 색깔의 벨벳 두건으로 자신과 카메라를 감싸고 촬영했던 것처럼, 파카 모자로 머리를 감싸고 광선을 차단한 채 들여다 보니 이제야 순백의 전원이 눈에 잡힌다. '완벽한 백색은 암흑과 똑같다, 흑백은 무색이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눈꽃 향연의 현충사뜰
외암민속마을 근처 들판을 빠져나와 20분쯤 달려 현충사에 도착한다. 외부 기온 영하 8℃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는 꽤 많은 자동차가 서 있다. 정문 옆 야산 언덕에서는 예닐곱 어린이들이 '쌀푸대'를 깔고 눈썰매에 열중하고 있다. 충무문 추녀에는 고드름이 잔뜩 달려 있고, 그 앞에서는 제설차 한 대가 분주하게 쌓인 눈을 밀어내고 있다.
현충사에는 현충사와 이순신장군 기념관이 있다. 현충사가 있는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결혼 생활을 하던 집터이자 그의 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던 곳이다. 충무문을 지나 곧게 뻗은 길을 걷는다. 현충원이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74년이었다. 38년이 되었으니 정원수들의 나이도 최소 38세란 말이렸다. 그 많은 나무들이 모두 눈모자를 쓰거나 눈꽃봉우리를 메달고 있다. 현충사 뜰이 온통 눈꽃 향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원 끝에서 계단으로 오르면 소나무 터널이 나온다. 도대체 이 나무들의 나이는 몇 살이 되었을까? 소나무가 어쩌다 옆으로 자라게 되었을까? 신기한 풍경을 지나니 홍살문이 나오고, 가파른 계단 끝에 오르자 '충의문'이 등장한다.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본전(사당)은 충의문에서 또 다시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본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들판과 그곳 너머로 보이는 산세가 이 곳이 명당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현충사에는 본전 외에도 볼만한 공간이 몇 곳 더 있으나 공사 중인 곳이 많아. 제대로 구경할 수는 없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충무공이 살던 '옛집'과 '활터', '구본전', '정려' 등을 들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서울 건천동(지금의 인현동)이다. 그는 21세에 결혼했는데, 부인은 당시 보성군수 방진의 외동딸이었다. 부인에 대한 기록은 방씨라는 것 외에는 없다. 계급사회에서 여성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성씨나 기록되면 다행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장인인 '방진'은 자식 부부에게 자신 소유의 집을 물려주어 살게 했는데, 그 집이 바로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는 '옛집'이다. 경내에는 이순신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소도 있다. 어찌 이리 아버지를 쏙 빼닮았을까? 이면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충무공은 그런 아들은 극진히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면은 21세 때 마을을 침입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훗날 이곳에 모셔졌다. '구본전'도 들려볼만 하다. 1932년 현충사가 중건될 당시 사당의 본전이었으며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곳에 걸린 '현충사' 현판은 숙종이 내려준 것이다.
길을 내려와 충무문 밖으로 나가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있다. 2011년 4월에 개관한 이곳은 충무공 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 교육하고 있다. 박물관 형식을 띄고 있어서 단순한 구경이 아닌, 학예 개념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왜군의 무기를 비교한다든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의 전술 논리를 정리한다든지, 우리 전투함의 구조를 공개한다든지하는 것이다. 두 곳의 전시실이 있는데, 1전시실에는 국보 제76호인 임진장초(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조정에 강계한 글들을 다른 사람들이 따로옮겨 적은 것을 모은 책으로, 전쟁 당시 해전의 경과, 조선 수군과 일본군의 정세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료), 융원필비(조선 후기 화포를 비롯, 50여 종에 달하는 각종 무기와 갑옷, 방패 등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정리한 책으로 훈련대장 박종경이 편찬한 것을 복제-원본은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주 화포인 천자총통과 헌자총통, 황자총통, 승자총통, 호준포, 비격진천뢰, 조총, 각선도본 전선, 전진도첩, 전라좌수영 거북선, 거북선 그림 등이 있다. 2전시실에는 징비록(유성룡의 전쟁 단상집), 고상안의 시문집 '태촌선생문집', 이순신 장군의 행적, 비문 등 일기를 제외한 관련 기록을 정리한 '충무공가승', '이충무공 전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천자총통 등은 국립박물관에서 임대해 전시하고 있으며 지속적 관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골스러운 맛집에서 민물고기 매운탕을 맛보다
시간이 오후 두 시를 넘어가는데, 아직 물 말고 먹은 게 없다. 아산의 후배가 데려간 곳은 '아산 가마솥붕어찜'. 외관만 보아서는 그닥 높은 내공을 지닌 집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입구 수족관에 가득한 송사리와 메기를 보는 순간 '무언가 제대로 하는 집이로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민물매운탕 전문점인 이 집에는 메기매운탕, 메기새우매운탕 등 민물을 재료로 하는 메뉴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메기새우매운탕을 시켰다. 메기와 민물새우와 송사리가 주재료였고 맛은 좋았다. 조미료 냄새가 없었고 생선 맛은 신선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재료의 원산지를 물었다. 그녀는 뻐기듯 대답했다. "송사리와 새우, 붕어 등은 하천에서 직접 잡고요, 메기는 양식장에서 사옵니다. 그런데 메기가 다 같은 메기가 아닌 건 알쥬?" 식당에서 파는 메기는 주로 양식장에서 공급을 받는데, 아주머니 말씀에 의하면 양식되는 메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산 민물고기를 먹으면서 자라고, 또 하나는 사료를 먹는다. '암만해도 사료멕인 메기가 물괴기 멕인 메기맛을 따라갈 수가 없지유, 우리는 물괴기 먹은 메기만 사용하지유.' 메운탕에는 미나리 등 야채와 수제비가 몇 조각 들어있었다. 공기밥과 함께 먹어서 배가 꽤 불렀지만 국물 남기기가 아까워 수제비와 칼국수 사리를 더 넣어 배가 찢어지도록 먹었다. 후배 외에도 일행이 더 있었는데, 운전 부담이 없는 사람들은 "매운탕을 그냥 먹는 건 순리에 어긋난다"며 충청도 현지 소주인 '맑을 린'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도고에서 미끈하게 온천하고 완전 숙면에 빠짐
겨울 풍경을 만끽하고 맛있는 메기새우매운탕까지 먹었으니 마음엔 평화, 몸은 든든했다. 그렇다고 추위까지 물러난 것은 아니다. 아산 여행을 하면서 온천을 빼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아산시를 대표하는 온천 지구는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이다. 우리는 도고온천으로 향했다. 도고 온천단지가 예전의 북적거림에 비해 요즘에는 비교적 한가해졌다지만 파라다이스도고 등 몇 몇 온천들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고, 특히 파라다이스 스파도고의 경우 5년 전 리뉴얼 작업 끝에 스파, 테라피, 수영, 야외수영, 그리고 캠핑장까지 갖춘 매력 리조트로 다시 태어난 뒤 충정권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많은 스파족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승용차로 빼곡한 주차장을 지나 데크를 통해 입구에 들어서니 로비다. 탈의실을 통해 온천으로 들어간다. 탕마다 물의 온도가 표시되고 메인 탕에는 수압을 이용한 마사지 시설도 있다.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모두 기웃거려보고 생전 하지 않던 때도 밀어 보았다. 2층 온천의 매력은 야외 온천. 그날 날씨가 영하 8도였는데, 그래도 야외온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뜨거운 물 속에서 차가운 밤 공기를 맞노라면 묘한 청량감과 함께 기분도 좋아진다. 뜨거운 곳이라 미니 정원에 눈이 쌓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1층에는 수영장과 푸드코트, 테라피시설과 유아놀이시설 등이 있다. 수영장은 실내와 야외가 연결되어 있어서 눈이라도 내리면 야외로 이동, 함박눈을 맞으며 배영을 즐길 수도 있다.
파라다이스 스파도고의 또 다른 인기 공간은 캠핑장. '파라다이스 스파 오토 캠핑장'은 스파 건물과 붙어있는데 카라반 30동, 바비큐파티를 즐길 수 있는 바비큐텐트 20동 그리고 Foot spa를 즐길 수 있는 야외 스파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체크인 이후에는 스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단 12월까지만 무료다. 이용요금은 주중 12만원, 주말 19만원이다. 예약 필수. www.paradisespa.co.kr 연말을 맞아 내놓은 시즌 상품도 눈여겨 볼 만 하다.
12월 21일 (금)부터 내년 2월 24일 (일)까지 매주 금, 토, 일에 운영되는 '나이트 스파'는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데, 실내 바데풀부터 야외 유수풀, 이벤트 스파 등 동계 시즌 운영되는 모든 스파 시설을 폐장(11시) 직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단 수영장은 밤 10시30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입장료는 어린이(36개월 이하는 무료) 성인 모두 1만5000원이다.
온천에서 실컷 놀고 근처 온천장에 들어갔다. 추위로 잔뜩 움추려들었던 몸은 완전히 녹아버렸고 저녁 먹으며 홀짝거린 소주에 심신이 축축 늘어진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침대에 누운 시간이 한 11시?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기절한 뒤 10시간 만에 깨어났다. 최근 10년 동안 제일 달고 깊은 잠이었다.
그래서 눈 오면 시골! [글·사진 이영근(여행작가)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58호(12.12.2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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