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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 데자네이루 본문
브라질 리우 데자네이루
한국을 떠난 지 213일째. 영국 런던을 출발해 스페인 마드리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며 2박3일 만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싼 항공편만 이용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5월 중순 유럽은 아직 쌀쌀했지만, 리우에 도착하자 뜨거운 바람이 훅 몰려왔다.
두툼한 옷을 훌훌 벗고 반팔로 갈아입었다.
새로운 대륙의 탐험을 앞둔 설렘과 긴장감도 몰려왔다. 런던에 머물면서 이미 리우에서부터 남미를 시계방향으로 도는 일정을 만들어놓았다.
브라질 상파울루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까지 내려간 다음 안데스산맥을 따라 북쪽으로 볼리비아에서 페루까지
올라가는 대장정이다. 유럽에서는 기차를 이용했지만 여기서는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다.
브라질 경제와 문화 중심지인 리우는 '놀라운 도시(Marvelous City)'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면성을 가진 도시였다.
광기에 가까운 남미 특유의 정열과 낭만, 브라질의 오늘이 보여주는 역동성, 최악의 빈부격차와 부랑인 등 사회의 주름이 뒤섞여 있다.
'혼돈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해석이 어려운 리우의 모습은 브라질과 남미의 현주소이기도 했다.
▶매혹과 낭만이 넘치는 도시, 리우의 보물=리우엔 세계 최고의 매력을 가진 곳이 많다.
대서양 연안에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이어진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등의 해변과 정열적인 축제가 사람들을 유혹하며,
리우의 상징인 코르코바도산의 '구원자 예수상', 슈거로프(Sugarloafㆍ설탕봉),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셀라론(Selaron) 계단도 빼놓을 수 없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먼저 예수상을 찾았다. 트램을 타고 산에 오르니 704m 높이 언덕에 대서양을 바라보고 팔을 활짝 벌린 예수상이 나타났다.
세계적 관광지답게 수많은 인파가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922년부터 9년에 걸쳐 만들어진 예수상은 높이가 39.6m, 양팔을 펼친 폭이 30m에 이른다.
평화와 구원의 상징인 예수가 리우를 끌어안는 듯했다.
예수상 앞에 서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중심가의 고층빌딩과 길게 이어진 해변, 기묘한 모양의 슈거로프, 세계 3대 미항인 리우항,
섬들과 대서양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리우를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리우 남부는 잘 정비돼 있었지만, 공장 노동자와 빈민이 주로 거주하는 북부는 매연 같은 검은 띠가 감싸고 있어 대조적이었다.
슈거로프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였다.
대서양 연안에 삐죽 나와 있는 반도에 바위로 이뤄진 거대한 봉우리로 높이가 396m다. 번역하면 설탕봉인 이 슈거로프에는 설탕이 없다.
사탕수수와 설탕의 무역으로 리우가 번성하던 16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이 봉우리가 원뿔형의 설탕 덩어리와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아침에 예수상에서 내려다본 리우도 멋있었지만, 그 반대편에서 저녁나절 긴 노을을 배경으로 한 리우도 일품이었다.
뒤편엔 열대우림이 버티고 있고, 어둠이 몰려오면서 거리와 건물에서 내뿜는 빛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예수상도 하얗게 빛났다.
사람들은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과 리우 전경에 넋을 빼앗겼고, 난간에서 뜨거운 포옹을 하는 아베크족도 많았다.
하지만 예수상과 슈거로프에서 본 리우는 겉모습에 불과했다. 역시 리우의 진짜 멋과 낭만은 끝없는 해변이었다.
리우는 남위 22도에 있는 열대 사바나 기후 지역으로 연중 기온이 25~30도, 우기인 7~8월을 제외하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한다.
사계절 수영이 가능하고, 해변을 달구는 태양만큼 정열적인 삼바 카니발의 흥분이 몰려오는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도착 둘째날 길이가 4㎞를 넘는 세계 최고의 코파카바나 해변을 찾았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아슬아슬한 수영복을 입고 해변을 활보하는 여성들, 백사장에서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사람들,
햇볕을 쬐거나 아예 자리를 깔고 드러누운 사람들, 물 속에서 신나게 수영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감미로운 '한 건'을 노리며 어슬렁거리는 청년도 오후에 몰려들 터였다.
▶개혁과 변화의 몸부림을 치는 중남미의 맹주=지금까지가 외부에 '보이는' 리우의 모습이라면, 실제 주민의 생활과 그들의 내면은 어떠할까.
브라질은 인구가 1억9300만명에 달하는 중남미의 맹주다.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인 아마존은 천연자원과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며, 경제규모는 세계 6위다.
그늘도 많다.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에다 빈민 거주지역인 파빌라(Favela)는 공권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하다.
하지만 2003년 집권한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과 그에 이은 호세프 대통령이 개혁에 나서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민의 기대도 매우 높다.
리우 중심가는 급성장하는 브라질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거대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의 치솟은 건물이 숲을 이룬 가운데 말쑥한 비즈니스맨이 바삐 오갔다.
최근의 유럽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활기는 여전했다.
깨어있는 젊은이도 만날 수 있었다. 코파카바나 해변을 향하다 거리에서 작은 시위대와 마주쳤다.
농민에게 아마존 밀림의 벌목과 개발을 허용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현장을 돌아보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청년을 발견했다.
그는 취재하기 위해 나온 현지 방송국의 기자였다. 필자가 여행 중인 한국의 기자라고 소개하자 관심을 보여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브라질은 사회간접자본과 교육이 문제"라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브라질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 이후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널리스트라 생각이 남다른 측면도 있지만, 이런 청년이 있는 한 브라질에도 희망이 있을 것 같았다.
▶광란의 밤을 보내는 젊은이의 미래는=정반대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특히 필자가 묵은 숙소의 풍경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현재를 탕진하는 젊은이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각지에서 몰려온 젊은이는 매일 광란의 밤을 보냈다. 숙소는 거의 만원이었고, 이들은 밤새 술판을 벌였다.
나중에 확인하니 그곳은 파티 호스텔이었고, 그런 호스텔이 곳곳에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반수면 상태로 잠을 설친 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광란의 축제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녀가 같이 묵는 숙소에 한 젊은 여성은 속옷을 드러낸 채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고, 파티가 벌어진 마당엔 술병과 술잔이 나뒹굴었다.
일부 청년은 그때까지도 비틀비틀 왔다갔다 하면서 술을 마셨다. 어이가 없었다.
숙소 직원에게 "매일 이러느냐"고 물으니 "거의 그렇지만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이 온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한 중년의 아줌마는 자식뻘쯤 되는 청년들의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면서 몸을 흔들며 일을 했다.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직원에게 "무척 피곤하겠다"고 말을 건네니 "정말 피곤하다. 거의 죽을 지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아침 숙소 밖의 거리도 비슷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날씨가 춥지 않기에 망정이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빈민가인 파빌라는 치안이 불안해 탐방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단편적인 모습이 브라질의 모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이 많은 과제를 안고 있으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브라질과 남미의 일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리우를 남미 첫 여행지로 잡은 것은 잘한 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우의 이 모습이 앞으로 2개월여 동안 남미를 돌면서 하나하나 파헤쳐야 할 과제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hjlee@heraldcorp.com
< 사진설명...첨부 파일 위로부터 순서대로 >
1)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인 '구원자 예수상'.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코르코바도산 언덕에 세운 예수상으로, 대서양을 바라보며 리우를
끌어안을 듯이 서 있다.
2)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해변으로 꼽히는 리우의 보물 코파카바나 해변.
고운 모래로 이뤄진 백사장이 4㎞를 넘으며 항상 젊은 남녀는 물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3)급성장하는 브라질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리우데자네이루 중심가 모습.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인 브라질을 이끌어가는 정유ㆍ철강ㆍ통신ㆍ금융 등의 본사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 여행 메모 >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지난해 10월 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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