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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빵의 변천사 본문
우리나라 파는 빵은 대부분 달콤합니다. 샌드위치에 쓰는 식빵에도 설탕이 꽤나 들어갑니다. 왜일까요.
빵을 부풀리려 쓰는 베이킹파우더나 베이킹소다는 쓴맛이 난다고 합니다. 혹시 달콤한 빵을 먹다 마지막에 씁쓸함을 느낀 적 있으신지요.
그게 화학팽창제 맛이라네요. 이 맛을 가리려면 설탕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빵이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아참, 버터도 꽤 들어가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빵이 달아야 더 잘 팔린다고 합니다. 빵이 ‘밥’이 아니라 간식이기 때문이죠. 일본의 영향이 큽니다.
대부분의 서양문물처럼 빵도 왜정시대에 들어왔는데요, 일본인들은 빵을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달콤한 빵은 원래 디저트지요.
(요즘엔 아예 ‘디저트 카페’나 ‘케이크 뷔페’도 생겼다고 합니다. 서양에선 밥은 안먹고 디저트만 찾는 어린이들은 ‘디저테리언’이라 부르며 놀리죠.)
<국화빵>
우리나라 빵 소비 문화도 참 많이 바뀌어 왔네요. 빵 문화의 변천사를 한번 알아볼까요? (물론 저는 빵 전문가도, 먹거리 연구가도 아닙니다.
그냥 제 생각을 정리…^^; 부족함이 있어도 양해바랍니다.)
1) 일본 빵 전성시대… 우리 빵은 일본 빵??
<와플의 일본버전… 붕어빵>
‘빵’은 포르투갈어 입니다. 일본에 첫 서양문물을 전해준 건 포르투갈인들이죠. 어쨋든 외래것을 자기 것으로 변형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와플은
오방떡이나 국화빵으로, 도우넛은 ‘도나쓰’로, 쉬폰케잌은 카스테라로 바꿨습니다.
‘카스테라’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어로 ‘성(castle)’인데, 왜 일본인들이 쉬폰케잌에 ‘성’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네요.
와이너리처럼 특정 공장을 ‘샤또’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래도 일본인이나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빵은 여전히 ‘앙꼬빵(단팥빵)’이죠.
불교의 영향으로 메이지유신 까지 육식(소고기 돼지고기)이 천황령으로 금지된 일본인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만두에 고기 대신 앙꼬를 넣을 정도로
단팥 사랑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육식(소고기 돼지고기) 금지령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엔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요즘도 ‘델리만쥬’라고 불리는 빵이 있는데,
서양말인 ‘델리’에 ‘만쥬(만두)’를 붙인 이름입니다.
일제시대나 해방이후, 한국전쟁 직후에 ‘빵’은 고급(?) 서양음식이라 서민들은 어쩌다 먹었나 봅니다. 대신 빵이 아닌 음식에 ‘빵’이란 이름을 붙여 먹었죠.
대표적인 게 호빵과 찐빵입니다.
<’호빵’ 또는 ‘찐빵’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중국식 만두>
중국 만두에는 밀반죽을 발효해 부풀려 찌는 게 있는데, 화교들이 만들어 먹던 이 만두를 ‘찐빵’ 또는 ‘호빵’이라 불러 먹었습니다.
중국 만두는 만두소를 고기와 야채로 했는데, 일본의 영향으로 팥소를 넣어 먹는게 유행했죠. 물론 지금도 겨울철 먹는 추억의 음식이기도 합니다.
2) 가게 빵, 제빵회사의 빵들
1970년 대로 넘어가면서 빵들이 봉지에 포장돼 동네 구멍가게 한켠에 놓이게 됩니다.
‘태극당’ ‘뉴욕제과’ 같은 빵집 빵은 여전히 고가여서 자주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는 아니었죠. 생일 때나 가끔 얻어먹을 수 있는… ^^
덕분에 쉽고 싸게 살 수 있는 삼립크림빵 등이 인기였습니다.
저는 당시 돈암동 판잣촌 근처에 살았는데, ‘크림’의 달콤한 맛을 처음 맛본 동네 꼬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우유로 만든 진짜 생크림은 아니고 쇼트닝(경화유)로 만든 것이었죠..^^ (쇼트닝으로 만든 가짜 생크림은 여전히 우리나라 빵집의 주요 식재료 입니다)
꼬마 4명이 모이면 돈을 각출해 크림빵을 사서 플라스틱 칼로 정확하게 잘라 나눠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안맞게 자르거나 크림이 한 쪽에 쏠리면 자르던 녀석은 아이들의 원망을 받았죠.
또 비싼 계란 노른자와 버터가 잔뜩 들어가야 하는 일본식 카스테라는 비싼데, 이와 비슷하게 만든 ‘보름달’ 등이 동네 가게에 놓이면서 아이들의 군침을
빼았았습니다. 바닥 종이에 붙은 달콤한 빵가루를 긁어먹는 맛이란… 또 땅콩크림샌드, 단팥빵, 우유식빵 등이 서민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 추억의 이름이죠? ㅋ
물론 여전히 일본식 빵이었습니다. 하긴, 당시엔 동네 빵집 베이커들에겐 일본 단기 유학이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17살의 나이에 일본에 ‘밀항’해 제빵기술을 배워 온 한 제빵사로부터 들은 증언)
3) 빠리바께쓰, 뚜러줄래의 등장
동네 가게 빵은 1990년대 까지 인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혜성(?)같이 프랜차이즈 빵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물론 빠리바께쓰나 뚜러줄래 이전에도 고려당이나 크라운베이커리, 신라제과 같은 프랜차이즈가 있긴 했습니다.
빠리바께쓰와 뚜러줄래는 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일본식 빵이 아닌 유럽식 같은 빵들이 놓이고, 무엇보다 간판이나 매장 분위기가 새끈한(?)
도회적 느낌이 났습니다. 괜스리 빠리의 카페에서 먹는 빵이란 착각이 들 정도였죠. 또 쟁반과 집게를 들고 빵을 골라 담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우리나라 빵 문화 또는 빵 업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동네 빵집을 고사시켰다, 자영업자들의 공적’이라는 비판부터 ‘빠리바게뜨 주인들은 직업을 구하기 힘든 퇴직자들이다,
제빵기술자들은 본사공장에서 연봉 3000만원을 안정적으로 받는다, 중소기업의 신화다’라는 옹호론까지.
아직 빠리바게뜨 문제를 한국사회는 일자리 창출이나 고용문제로 보는 것 같습니다.
빠리바게뜨를 ‘빵맛’이라는 관점으로만 본다해도 명암은 분명합니다. 저질재료로 무조건 싸게만 만들려던 동네 빵집은 직격탄을 맞고 거의 사라졌습니다.
실력있는 제빵사들은 빠리바게뜨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끝에 자기만의 개성과 가격경쟁력을 갖췄습니다.
한편으론 빠리바게뜨는 빵맛의 개성을 망친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가맹점주들은 본사로부터 냉동된 생지(반죽.. ‘생지’라는 말조차 국적불명의 일본말입니다^^)를 전기오븐에 굽기만 하면 됐습니다.
제빵기술이 없어도 창업이 가능해졌지요. 언뜻 오븐에서 바로 나온 따끈한 빵이긴 한데… 냉동이다 보니 생이스트도 못쓰고 팽창제를 써야 합니다.
빠리바게뜨와 뚜레주르가 전국 빵집의 절반 가까이 된다는데, 본사가 맛을 통일하다 보니 집집마다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됩니다.
대량생산 대량배달을 하다보니 다양한 화학약품을 씁니다. 슈퍼에서 파는 빵과 재료면에선 별 차이도 없습니다.
4) 아티제의 역습.. 그러나..
주한 프랑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도 빠리바게뜨 지점이 있습니다.
간판만 보고 ‘본국의 맛’을 기대했던 프랑스인들이 만족하지 못했는지, 빠리바게뜨 서래지점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프랑스인 파튀세가
빵을 직접 굽는 곳입니다. 본사 직영점이 아닐까 합니다. 바게뜨 뿐 아니라 케잌 등 여러 빵들을 다양하게 만듭니다. 여타 지점에선 없는 메뉴들입니다.
빠리바게뜨 빵에 만족하지 못한 유학파 등 ‘고급입맛’들은 다른 전문집을 찾기 시작했고… 한 때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던 ‘artisee(아티제)’는 케잌을
아예 일본에서 장인으로 인정받는 파튀세를 영입해 만들었습니다. 물론 “재벌 자제들이 동네빵집을 죽여서야 쓰나”라는 대통령의 훈계에 사업을 정리했지요.(그런데 매입업체가 대한제분이라니 참…)
결국 빠리바게트나 아티제나 일본식 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물론 일본빵은 세계 제빵 대회 수상을 휩쓸 정도로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
5) 이젠 발효빵 시대??
하지만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느샌가 이런 대량생산의 프랜차이즈 공장 빵을 거부하고 장인의 양심과 자존심으로 무장한
동네 빵집들에 빵마니아들의 입맛이 돌아서고 있습니다.
<발효빵… 설탕이 없다>
대표적인 곳이 가로수길의 P 빵집이 아닐까 합니다.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효모빵’ 바람을 일으킨 곳입니다.
베이킹파우더가 쓴 맛이 난다면 생이스트는 군내(메주냄새와 비슷한)가 나는데, 유산균이나 효모를 이용해 반죽을 숙성시킨 빵은 쓴맛도 군내도 안납니다.
이곳은 효모나 발효균으로 반죽을 부풀릴 뿐 아니라 밀가루 마저 직접 제분합니다.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엔 방부제 같은 농약이 들어가서 랍니다.
이 곳 주인장의 완벽주의가 징합니다.
덕분에 주방엔 밀가루를 빻는 큰 제분기도 있습니다. 마치 방앗간처럼요. 캐나다산 유기농 밀을 쓴다고 하네요. 빵의 기본은 밀,물,효모,소금입니다.
이 4가지 재료로만 만든 빵도 있고, 말린 과일이나 까망베르 치즈, 감자 등을 응용해 여러 종류의 빵을 내줍니다.
설탕과 버터를 거의 안 쓰니 밀 본연의 고소함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바게뜨 빵이 겉만 바삭하고 속이 헐렁한데 비해, 이 곳 바게뜨는 속도 알찹니다. 팽창제를 안쓰니 빵이 심하게 부풀지 않아서 그런듯 합니다.
두세조각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불러옵니다. 그런데 값이 조금 나가는 게 흠입니다.
재료문제나 생산속도로 보아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쉽게쉽게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은 아닙니다.
그러던 중, 최근 저희 동네에서 효모빵집을 발견했습니다. 이집은 가로수길 P빵집처럼 유럽대륙에서만 보던 빵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그런가 봅니다. 동네빵집답게 적당한 타협이 있습니다. 단팥빵도 있고 크림빵도 있고 조각케잌, 쿠키도 있습니다.
가격도 착한 편입니다.
<우리동네에 있는 발효빵집 빵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빵을 팽창제 대신 효모를 배양해 부풀립니다. 또 이 집에서 ‘식사빵’이란 이름으로 자신있게 선보이는 호밀빵이 있는데
독일산 호밀, 물, 효모, 안데스 암염… 이 딱 4가지로만 만드는 빵이 3~4 종류 있습니다.
식빵에도 버터나 계란 우유 등이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니 가볍습니다. 맛이요?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밀 본연의 향이 입안 가득합니다. 최근 입소문이 났는지 주말 오전이면 줄을 서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
그래두 줄 서서 이런 집 빵맛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고맙습니다.
어줍잖게 정리하면, 우리나라 빵 변천사는 이렇습니다.
일본식 국화빵(와플), 앙꼬빵, 도나쓰(꽈배기) -> 카스테라, 케잌 (고려당, 크라운베이커리, 신라명과 등) ->
빠리바게뜨, 뚜레주르 같은 도회적 프랜차이즈 -> 아티제 (고급 디저트) -> 효모로 발효한 밥빵
돌고 돌아 원래 빵이 가진 역할을 찾는게 아닌가 합니다. 지나고 보니 결국 제자리네요. 어설프게 아는 빵에 대해 이리저리 정리하려니 힘드네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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