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의 학문과 삶의 재조명을 통해 퇴계 선생의 정신과 삶의 소박함을 연출한 편안하고 정다운 공간으로 조송되었다.
선생의 무덤은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km 가량 떨어진 토계리(土溪里)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 위에 있다. 도로변에 작은 표석을 세웠으나 지나치기 십상이다. 갑자기 좌우로 갈라지는 도로변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오후의 봄 햇살을 벗삼으며 한가로이 계신 촌로(村老)께 여쭈었다.
"퇴계 선생님 묘소가 어디 있습니까?"
"저 만디(산꼭대기)에 올라가 보소"
방금 지나친 산을 가리키신다. 도로변에 주차하고 아래로 낙동강 안동호를 바라보는 가파른 언덕을 10분 가까이 올라가니 선생님의 묘소가 있었다. 내 살고 있는 고양(高揚)주변의 크고 잘 꾸며진 능(陵)들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가슴 두근거리며 올라와 만난 선생님의 묘는 분봉이 낮았으며 망주석과 작은 비석만 세우진 아주 검소한 묘역이었다. 보라색 작은 할미꽃과 각시붓꽃이 군데군데 피어 선생님을 벗하고 있다.
퇴계 선생의 유계(遺戒)에 따라 신도비(神道碑)와 의물(儀物) 등은 일체 세우지 아니하고, 오직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묘비 만이 서 있을 뿐이다.
묘비에는 선생의 자명(自銘)이 새겨져 있다.
나면서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도 많아
중간에 어찌하다 학문을 즐겼는데
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받았던고!
학문은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더 주어졌네
나가서는 넘어지고
물러서서는 곧게 감추니
나라 은혜 부끄럽고
성현 말씀 두렵구나
산은 높고 또 높으며
물은 깊고 또 깊어라
(........)
조화 타고 돌아가니
무얼 다시 구하랴.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