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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의 가르침

퇴계태실(胎室)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10. 13. 21:00

퇴계태실(胎室)

 

 

명 칭 :  진성이씨 노송정종택(眞城李氏 老松亭宗宅)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건 축 주 :  이계양(李繼陽, 1424~1488)
건축시기 :  1454년(단종 2)
소 유 자 :  이창건(관리자 : 이창건)
문 화 재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0호, 1985년 10월 15일 지정, 4동

 

이 건물은 1454년(단종 2) 퇴계의 조부(祖父)인 이계양(李繼陽)이 건립한 종택이다. 사랑채의 동편 마루 상부에 온천정사(溫泉精舍)라는 편액(扁額)이 있으며 대문에는 성림문(聖臨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집은 도산면 온혜리 온혜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00m 정도 가면 우측 산 밑에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0호인 이 종택은 노송정종택이라고도 하는데 퇴계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퇴계태실이라고도 한다. 솟을 대문인 성림문(聖臨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노송정(老松亭)이 자리하고 좌측으로 口자형 정침이, 우측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전면쪽에 사랑을, 배면쪽으로 정침을 주면서 좌우에 익사를 거느린 口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독특하게 몸채의 중앙에 방 한 칸이 돌출되어 있다. 이 방에서 퇴계가 태어났다. 약 60여년전 개축되었다고는 하나 조선 사대부가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태실과 같은 독특한 기능을 가진 방과 상류주택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이계양(1424∼1488)의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자는 달보(達甫) 호는 노송정으로 퇴계의 조부이다. 1452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기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이듬해 예안 뒷편 용두산(龍頭山) 남쪽 기슭 온계(溫溪)에 새 터전을 마련하여 노송정을 짓고 주촌(周村)에서 이거하여 농사를 지으며 초연히 물외자적(物外自適)하였다.
 

 

ㅁ건축 배경  
두루에서 진성이씨 가문의 삶터를 온혜로 옮긴 사람은 선산부사 이정이 낳은 9남매 중의 막내아들인 이계양(李繼陽)이다. 그의 호는 노송정(老松亭)이다. 노송정공 이계양은 단종이 폐위되자 출사를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살기를 결심하며, 온혜의 들을 택하여 집을 짓고 들어앉았다. 

 

ㅁ건축 특징

퇴계태실은 口자 형상의 비좁은 안마당 북쪽에서 목젖처럼 남쪽을 향하여 돌출되어 있다. 안방, 또는 안채의 마루와 쪽마루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쪽마루와 연결되지 않은 3면은 좁직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남쪽 방향의 난간은 좀 넓은 마루를 안고 있다. 두 사람이 앉아서 작은 상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태실 안은 아주 비좁다. 『퇴계선생과 도산서원』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길이는 큰 사람이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양쪽 벽에 닿을 만하였고, 폭은 두 사람 정도가 겨우 누울 수 있는 여유만을 갖추고 있었다. 퇴계는 연산군 재위 7년, 1501년에 이 방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진사공 이식, 어머니는 정경부인 박씨이다. 태실이 좁직한 마당 한가운데 들어서 있고, 마당가로는 사방으로 방이 둘러싸고 있으니, 거기서 몸을 풀던 퇴계 이황의 모친은 비명소리 하나 마음대로 내지를 못하였으리라! 태실 안 좁은 공간 속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정경부인 박씨의 땀으로 얼룩진 얼굴이 떠오르지를 않는가?”
태실 남쪽 처마 밑에는 ‘퇴계선생태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살지고 둔중한 느낌이 드는 글씨이다. 남쪽의 조금 넓은 난간마루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원형기둥은 나뭇결의 무늬가 뚜렷하고 아름답다.
태실이 口자 형상의 안마당 안쪽으로 돌출하여 있으므로, 안마당은 ㄷ자 형상의 좁은 공간으로 되어 버렸다. 좁은 안마당은 회칠이 되어 있었는데도 얼마쯤의 빛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처마 끝선을 타고 들어온 빛줄기가 안마당의 시멘트 위에 굴곡진 그늘을 만들어 준다. 

 

ㅁ건축 구성

대문채, 노송정, 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끝이 사당이고, 그 다음이 노송정이고, 서쪽에 본채가 있다. 口자 건물의 본채에는 앞쪽으로 사랑채가 있다. 안마당은 통상의 경우보다 좁고, 안채로부터 그 한가운데로 방 하나가 튀어나와 있는 구조이다. 본채 건물의 고매기에 기와조각으로 만들어 넣은 그림이 아주 매력적이다. 그러나 보수할 때마다 그림의 모양이 바뀌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현판

노송정(老松亭) 
이계양의 호이면서 이 집의 당호이다. 이계양이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주변에 늙은 소나무가 많았으므로 노송정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앞에 보이는 바깥마당의 정자 건물에는 노송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퇴계의 조부인 이계양의 호를 따라 정한 당호로, 아주 정성스레
다듬어지고 올 곧게 자리한 해서체이다.

 

성림문(聖臨門) 
종택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 들어가면, 처음으로 통과하게 되는 문에 걸려 있다. 그 위로는 그 문을 왜 성림문이라고 하는지를 설명하여 놓은 현판이 붙어 있다. 퇴계 이황의 모친인 춘천박씨가 공자가 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퇴계 이황을 낳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굵고 튼튼하며 강한힘이 넘쳐나는 듬직한 해서체이다.

 

해동추로(海東鄒魯) 
노송정 마루방 안에 서면, 동쪽 벽에 보인다. 노나라의 추 땅은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그곳과 온혜를 상호 연결시켜 바라보는 의식을 담고 있는 현판이다. 
 

 

                                둥글둥글 부담없는 해서체이다. 추로는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이다.

산남낙민(山南洛閩) 
서쪽 벽에 있는 현판이다. 낙읍은 정호·정이 형제가 살았던 곳이고, 민 땅은 주자의 삶터였다. 정이에서 주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우리의 조선시대를 장악한 주자학을 생산하여 낸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해동추로’가 뜻하였던 것과 같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쪽 고른 획으로써 아주 편안하며 강한 느낌의 해서이다. 해동의 낙양과
민중이란 뜻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발상지임을 의미한다.

 

 
퇴계선생태실(退溪先生胎室) 
태실 남쪽 처마 밑에 붙어 있다. 살지고 둔중한 느낌이 드는 글씨이다. 
 

안진경체의 해서로써 힘있고 안정되며 아주 편안하고 멋스럽다.

 

 
온천정사(溫泉精舍) 
사랑의 동편에 걸려 있고, 남쪽에 있는 두 개의 현판과 한 사람의 작품이다. 글씨는 획이 가늘고 미끈하다. 
  
귀암(龜巖) 
지간(芝澗) 
온계서족운(溫溪敍族韻) 
기자식우독서용수사(寄子埴堣讀書龍壽寺) 
성림문중수기(聖臨門重修記) 
선조퇴계선생태실중수기(先祖退溪先生胎室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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