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에 있는 정서진 선착장. 배를 타기 위해서는 갯벌 위에 놓인 250m의 가교를 걸어가야 한다.
눈 앞 능선 4개가 이어져 있는것 처럼 보이는 게 세어도다.
시대가 변해 거의 사라진 말 가운데 ‘1일 생활권’이란 게 있다. ‘오지’라는 단어도 쓰임이 줄어들었다.
오지라 일컫던 강원도 심심산골 저 두메마을도, 남도 앞바다 저 외진 섬도 어지간하면 1일 생활권에 들어오면서다.
‘1일 생활권’은 너무 당연한 게 되면서, ‘오지’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어서 종적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어도는 다르다. 1일 생활권이 보장되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다.
글=손민호·홍지연 기자
섬 북쪽에서 바라본 세어도의 갯벌 모습이다. 물이 들고 빠졌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세어도의 갯벌은 육감적면서 역동적이다.
오지로 들어가는 길
정서진 선착장은 청라김포 간 해안도로 위, 지번이 없어 내비게이션에도 찍히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로 왼편으로 바다를 향해 250m 길이의 가교가 갯벌 위를 가로지르며 길게 누워 있었는데, 가교를 건너자 20평 남짓한
뜬부두가 나왔다.
가까이서 본 세어도는 홀쭉했다. 폭은 좁지만 길이는 2㎞ 가까이 된다. 면적은 40만8000여㎡(약 12만 평)다.
1 갈대밭 바로 옆에 덩그러니 있는 ‘변소’. 손으로 직접 써붙인 팻말이 정겹다.
2 급수시설이 들어오기 전 세어도 주민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식수, 생활용수로 썼다.
우물은 심지어 김치를 보관하는 냉장고 역할까지 했다.
정서진호는 통장 채수정씨와 아내 김명신(54)씨 삶의 터전이다. 통장 부부는 생업을 포기하고 날마다 섬 주민을 뭍으로 실어나른다.
남편이 키를 잡으면 아내는 닻에 줄을 묶는다. 부부는 세어도 지나던 배편이 끊긴 1995년 이후 바람 때문에 배를 띄우지 못하는
날 빼고는 하루도 쉬지 않고 17년 동안 배를 몰았다.
맨 처음 1년은 배를 빌려서 썼는데, 구청이 8.5t급 10인승 배를 지원해줘 그걸 몰다가 2008년부터는
지금의 21t 정서진호(20인승)를 몬다.
“정서진 선착장이 가깝긴 하지만 섬 사람들은 만석부두로 가요. 거기로 가야 다른 교통편이 연결되니까요.
40분 뱃길이 5분 뱃길로 당겨졌으니 좋지만, 정서진 선착장에 가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주민등록등본 1통 떼러 나갔다가 배 시간 못 맞추면 1박을 해야 돼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는데 벌써 섬에 도착했는지 줄을 잡은 선장 아내의 손길이 부산했다.
세어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섬 ‘컴’을 비켜서 돌아왔는데도 10분이 채 안 걸렸다.
인천공항 생기면서 고기 줄어
3 세어도 둘레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나무를 만나게 된다.
소나무숲을 거쳐 잘 여문 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밤나무숲, 도토리나무를 차례로 지난다.
4 세어도 선착장에 도착한 ‘정서진호’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세어도 앞바다에는 섬 주민들의 크고 작은 고깃배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어른 대여섯 명 타는 작은 배였다. 홍씨는 “농어는 손낚시로 잡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 배를 탔지만, 잡은 건 농어 한 마리와 망둥이 몇 마리가 전부였다.
홍씨가 잡아 올린 농어는 제법 커보였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옛날에는 10㎏짜리도 숱하게 올라왔는데 이건 1㎏나 되려나 모르겠네요.” 표정이 시무룩했다.
세어도 주민 대다수의 직업은 어업이다. 봄에는 뱀장어, 여름에는 농어, 가을에는 새우를 잡는다.
벼도 심고 인삼도 심고 새우 양식도 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영종도에 공항이 생기면서 예전만큼 고기가 안 올라온다.
한때 20척이 훨씬 넘던 어선은 13척이 전부다. 양성철(55) 어촌계장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엔 배가 나가면 농어 200㎏은 거뜬히 채우고 왔어요. 바지락도 많았어요.
너무 많아서 집마다 하루 60㎏씩 제한을 둘 정도였어요. 영종대교가 생기고선 바지락이 숨어버렸고,
아라뱃길 공사를 하면서 바닷속 돌을 치운 뒤로는 농어도 안 보여요.”
전기도 물도 없던 시절
마을 복판에 들어서자 번듯한 2층 건물이 나타났다. 마을회관으로 섬에서 유일한 2층 건물이다.
식당도 민박집도, 수퍼마켓도 이 섬에는 없다.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곳은 옛날 분교가 있던 자리다.
집마다 담벼락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물이 귀했던 시절 식수를 받아놓던 식수통이다.
세어도에 급수시설이 들어온 건 2004년이다. 통장 부인 김명신씨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물 받으러 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물 지게 지고 마을 우물로 갔어요. 늦게 가면 모두 다 퍼가고 없으니까 일찍 갔어요.
비가 오면 집 안에 있는 모든 그릇을 꺼내다 받았어요. 빗물은 식수로 썼어요. 찝찔한 섬 우물 물맛보다는 훨씬 좋았으니까.”
세어도에는 전기도 없었다. 세어도에 전기가 들어온 건 2007년이다.
옛날에는 호롱불에 의지해 살았고, 90년대 이후에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썼다.
섬에 들어온 지 50년이 넘었다는 오향환(80) 할머니로부터 호롱불 켜던 시절 얘기를 들었다.
“김치는 우물에 보관해 먹고 살았지. 건전지만 갈아 끼우면 되니까 라디오만 들었고. 자가 발전소가 들어왔어도
불편한 게 많았지만.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전기를 쓸 수 있었으니까.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냉장고가 자주 고장 나더라고.”
마침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섬에 가로등은 모두 9개가 있는데, 마을회관 주변에 8개가 있다.
가로등은 섬에 들어온 지 5년밖에 안 되는 막내다.
섬 앞머리에 모래가 쌓이면
섬 북쪽 끝에 다다르자 엄청난 규모의 갯벌이 앞을 가로막았다. 세계 3대 갯벌이라는 동막갯벌이다.
갯벌 너머로 강화도 동막해변이 보였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는 없고 거대한 진흙 덩어리만 있는 풍경은 낯설었다.
이재건 서구청 정서진관광팀장이 “1년 중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는 백중사리 때를 제외하곤 바다가 갯벌을 채우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서구청은 최근 2.7㎞ 길이의 둘레길을 조성했다. 둘레길은 선착장에서 북쪽 전망대까지 섬을 관통한 뒤 서쪽 해안을 따라
선착장까지 나 있었다. 섬 남쪽에도 전망대가 있었다.
나무다리처럼 생겼는데 위에서 보니 영종대교가 수평선 마냥 시야를 가로질렀다.
밤만 되면 섬이 칠흑처럼 깜깜했던 시절, 섬 남쪽만은 영종대교의 화려한 불빛을 받아 환했다고 한다.
전망대 아래는 모래밭이었다. 원래 여기도 갯벌이었는데, 영종대교가 들어선 뒤로 모래가 쌓인다고 했다.
전망대 위에서 이재건 팀장이 흥미로운 전설을 들려주었다.
“세어도에는 예부터 섬 앞머리에 모래가 쌓이면 섬이 부자가 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바로 여기가 앞머리이거든요.
요즘 섬 주민들이 이 모래밭을 보며 은근한 기대를 품고 살고 있지요.”
●세어도 정보
인천시 서구 정서진 선착장 또는 동구 만석부두에서 배가 뜨는데 물때에 따라 항구와 배 시간이 달라진다.
물이 많이 차면 정식 항구인 만석부두에서, 물이 빠지면 간이 항구인 정서진에서 배가 뜬다.(이달 21~27일은 정서진, 28~30일은
만석부두) 어느 항구든 채수정 통장의 ‘정서진호’가 다녀온다.
정서진 선착장에서는 오전 10시30분 배를 타고 들어가 오후 4시 세어도에서 배를 타고 나올 수 있다.
만석부두에서는 오후 3시 출발하는데, 배편이 없어 이튿날 오후 2시 섬에서 나올 수 있다.
물때에 따라 배 시간이 달라지니 떠나기 전 자세한 시간표를 서구청 홈페이지(seo.incheon.kr)에서 꼭 확인해야 한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없으니 마을회관 신세를 져야 한다. 뱃삯은 없다. 대신 선착장에서 해경에게 인적사항을 적어줘야 한다.
군사지역이어서 일몰 이후에는 운항이 금지된다. 그러나 이 배편도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다 취소된다.
만석부두(인천시 동구 만석동)는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갈 수 있지만, 정서진 선착장은 내비게이션에도 안 나온다.
인천 서구청 문화체육관광과 032-560-5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