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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의 가르침

[스크랩] 역사적인 인물따라…퇴계 오솔길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4. 7. 25. 14:49

[지속가능한 관광 걷기] 역사적인 인물따라…퇴계 오솔길
5백년 다져진 흙길…그 속에 퇴계의 철학이 스며있다
퇴계가 '경암'(景巖)이라 부른 바위 위에 서서 본다. '과연 아름다운 길이었다. 알맞춤한 경사와 구비와 탄력을 가진 길이었다. 멈춰서면 어디서든 흐르는 강물이 보였고 강은 번번이 제 모습을 바꿨다.'(소설가 김서령이 퇴계 오솔길에 쓴 문장. '김서령의 家'중에서)
늦가을 퇴계 오솔길에서 낙엽밟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지는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범바위전망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산책로가 있다.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여러 철학자들이 이곳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을 얻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 하이델베르크 성(城)과 구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도 있는 아름다운 길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일본 교토에도 똑같은 이름의 길이 있다. 니시다 기타로라는 철학자가 걷던 길에서 유래됐는데, 수로를 따라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안동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퇴계 오솔길은 외국의 두 철학자의 길에 갖다대어도 모자람이 전혀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퇴계길에 대한 평가절하다. 16세기 조선의 대(大) 학자 퇴계(1501~70)가 걸었던 길이, 일부 구간이긴 하지만, 반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품고 옛 모습 그대로 오롯이 남아있는데다, 길 주변 풍광이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길에 스민 철학은 현재에도 큰 울림을 준다. 그런데도 이 길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최근에서야 일부가 복원돼 푯말 정도 붙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가진 자산을 그동안 얼마나 도외시했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퇴계 오솔길 구간은 도산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이육사문학관 뒤쪽에서 농암종택까지의 숲길(3㎞)이다. 경북도의 옛길 복원 사업 1호로 최근 단장됐다. 옛길 복원 사업으로 단장되기 전까지는 동네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니지 않던 길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이 길의 바깥쪽에 있는 35번 국도이다. 옛길 시작점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어 운치가 없지만(옛길을 복원한다면서 시멘트로 포장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곧 흙길이 제 모습을 나타낸다. 낙동강을 따라 쉬엄쉬엄 걷는 길 옆으로 너르게 펼쳐지는 숲과 강, 산의 조합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 모습을 바꾸고, 천천히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와 내디디는 발걸음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는 귀를 정갈하게 한다. 차가 다니는 길에서 훌쩍 벗어나 있어 차 소리 같은 문명의 소리는 차단된다. 코로는 소나무 향기를 맡고, 발은 500년 넘게 다져진 흙의 푹신푹신함을 느낀다.

시각과 청각, 후각 그리고 촉각으로 느끼는 이 강변길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지만, 그것으로만 끝낸다면 퇴계가 섭섭해할지도 모른다. 남은 한 가지는 머리로 사유하는 유산(遊山)! 글자 그대로 풀면 '산을 놀다', 산을 놀면서 길을 가라는 것이다. 퇴계 오솔길에서 왜 '유산(遊山)'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면 퇴계가 왜 이 길을 걸었을지 설명해야 한다. 퇴계는 13세때 숙부인 송재 이우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입산하다 집에서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50리 강변길을 만나게 된다. 이후 퇴계는 64세까지 이 길을 대여섯번 더 왕래했는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할 만큼 이 길을 아꼈다. 청량산으로 가는 길에서도 그는 공부를 했다. '유산(遊山)은 독서와 같다'고 했으니, 산을 놀며 가는 것이 공부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다. 머리와 마음을 깨우쳐 주는 사색, 퇴계 오솔길 걷기 여행을 완성시키는 것은 유산(遊山) 정신이다.

이 길은 퇴계만 걸은 것이 아니다. 퇴계를 신봉하던 수많은 유학자들이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를 뵙고 퇴계가 걸었던 길을 따라 청량산까지 걸었다. 퇴계는 유산(遊山)하는자는 유록(遊錄)을 남겨야 한다고 했고, 그게 일종의 지침이 되어 당대 선비들 사이에선 청량산 기행문 쓰기가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청량산박물관에 따르면 지금 남아있는 청량산 유람록만도 족히 여든을 헤아린다고 한다(민속원에서 발간한 '옛 선비들의 청량산 유람록Ⅰ' 참고. 오늘날 쓰는 쉬운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렇게 퇴계와 퇴계 제자들이 걸었던 청량산까지의 길은 9.5㎞ 정도가 된다고 한다. 퇴계 오솔길은 그 일부인 셈이다. 이 길은 '녀던 길'이라고 불렸는데,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지금은 '옛날 길'이라는 뜻의 '예던 길'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군데군데 끊어진 구간이 많지만 상당 구간은 옛길 그대로 남아 있어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퇴계 오솔길을 걷다보면 미천장담((彌川長潭), 경암(景巖), 한속담(寒粟潭), 학소대((鶴巢臺) 등 퇴계가 이름을 붙인 냇가의 바위, 벼랑, 소(沼) 등을 만나게 된다. 퇴계가 청량산까지 오가며 정든 바위 등에 일일이 붙인 이름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농암종택을 지키는 이성원 박사 덕분이다. '어부가'로 유명한 조선시대 학자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17세손이다. 퇴계를 전공한 이 박사는 퇴계 문집을 일일이 찾아 퇴계 오솔길의 콘텐츠를 살려 냈다. 농암의 원래 집터는 1975년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됐고 농암종택은 수몰을 피해 여기저기 흩어졌다 이곳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수 년 전에 다시 모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농암종택이 들어선 것은 농암과 퇴계, 두 가문의 범상치 않은 인연 때문일까. 농암종택은 퇴계 오솔길의 끝지점이고, 청량산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 농암은 퇴계의 숙부와 함께 과거에 급제한 사이로 퇴계는 농암의 아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21세기 농암 후손이 살려낸 16세기 퇴계 길, 반 세기를 가로지르는 두 집안의 아름다운 인연이 옛길에 드리워져 있다.

퇴계 오솔길을 포함한 전체적인 예던 길 복원 사업을 위해서는 안동시와 봉화군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활발해야 할 듯하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계가 있지만, 길은 경계가 없다.


#여행TIP…농암종택 1박2일 코스도 강추

차를 운전해 가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에서 내려서 국도 35번(봉화방면)을 타면 된다. 걷기 여행을 즐기려면 버스가 좋은데, 길이 다 연결이 되지 않다 보니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안동터미널 앞에서 67번 버스(1시간 간격)를 타고 도산서원 혹은 농암종택에 내린다.

조성된 퇴계 오솔길은 3㎞ 정도여서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 남짓이면 걷는다. 퇴계 오솔길 종착지인 농암종택에서 1박을 하면서 퇴계의 목적지였던 청량산까지 가보는 여행을 권한다. 올해만 해도 한덕수 전(前) 국무총리, 김형오 국회의장 등 유명인사들이 숙박을 하기도 한, 아름다운 고택이다. 운이 좋으면 농암종택지기이자 농암의 17세종손인 이성원 박사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숙박비는 방에 따라 4만~10만원(http://www.nongam.com, 054-843-1202). 청량산은 작지만 절경이 많아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차고 넘친다.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를 방문하고,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전통다원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 걷기 여행의 마무리로 제 격이다.

#퇴계가 머물며 읊조린 시(지도참조)

☞ 깊숙이 뚫린 못이 유달리 맑디맑아/ 음휴가 숨었다네 목석의 영괴/ 열흘의 긴 장마가 이제사 개이니/ 어둔 달에 구슬 안고 돌아가 누워다오(월명담)

☞ 벌벌 떠는 여윈 말로 푸른 뫼를 넘어가서 / 깊은 골짝 굽어보니 찬 기운이 으시으시 / 한 걸음 두 걸음 갈수록 선경이라 / 기괴한 돌 긴 소나무 시냇가에 널렸구료(한속담)

☞ 부딪는 물 천년인들 다할 날 있으련만 / 중류에 우뚝 서서 기세를 다투누나 / 인생의 발자취란 허수아비 같은지라 / 어느 누가 이런 곳에 다리 세워 버텨보리(경암)

☞ 굽이굽이 맑은 여울 건너고 또 건너니 / 우뚝 솟은 높은 산이 비로소 보이네 / 맑은 여울 높은 산이 숨었다가 나타나니 / 끝없이 변한 자태 시심을 돋워주네(미천장담)


걷기 특별취재팀 = 손동욱·이춘호·정혜진·백승운·임보연·최은지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출처 : 영천이씨대종여로
글쓴이 : [유장]행암공파[영양군24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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