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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경남북,부산,대구)

합천여행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11. 30. 10:28

 

 

 

가을에 물들다, 합천 만추여행



합천에 간다 했다. 모두들 해인사에 가느냐 물어오기에, 해인사도 들러볼 예정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팔만대장경을 보기 위해 떠나는 수학여행이 아니었다.

합천에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당신이 채 몰랐던 보물 같은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바로 그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은빛 파노라마, 황매산 억새군락

경남 산청과 합천의 경계에 있다. 때문에 산청 사람들은 '산청 황매산'이라 하고, 합천 사람들은 '합천 황매산'이라 한다.

봄이면 철쭉군락, 여름엔 갈참나무숲, 가을엔 억새군락, 황망한 겨울엔 눈꽃마저 아름답게 피니, 이래저래 남 주기 아까운 산임이 분명하다.

본디 이곳은 축산업을 업으로 삼고 살던 합천군민들의 젖소 방목지였다.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방목되던 젖소들의 분뇨 냄새로 관광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본격적으로 관광지화했단다.

해발 1108m에 이르는 고지대지만 억세군락지인 800m 고지까지 시원스레 도로가 닦여 있어 힘든 등반 없이도 넓은 고원지대에 펼쳐진 억세군락을 볼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억새 구경에 나섰다.

사람 키 높이를 훌쩍 넘는 황금빛 억새 사이를 가르며 동행한 문화해설사에게 '혹시 뱀은 없죠?' 물었더니

황매산은 뱀, 칡덩굴, 땅가시가 없는 '삼무(三無)산'으로 통하니 안심하라 이르며 무학대사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합천은 어딜 가든 무학대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려말, 이곳은 무학대사가 불법을 닦았던 곳이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산을 오르내리며 뒷바라지를 했는데, 험한 산길에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거나 땅가시에 발등을 긁히고, 뱀 때문에 놀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무학대사는 산신령에게 백일기도를 올려 뱀과 땅가시, 칡덩굴을 모두 없앴다는 이야기다.

억새 평원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은빛 억새군락이 농후하게 사방으로 펼쳐지고 있다. 장관이다.

해질 무렵, 노을이 질 때면 더욱 진풍경을 자아낸다.


 

 

 

 

 

 

삼색 소리의 오케스트라 향연, 소리길

발걸음을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귓전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스레 맴돌았다. 홍류동 계곡물을 따라 이어지는 가야산 소리길. 비 온 직후 이곳을 걸었더라면 분명 수십 명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단원을 거닐고 길을 걷는 기분이었으리라.

수많은 발자국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오솔길 위론 높은 나무 가지들이 차양처럼 드리워져 있다. 한낮에도 땡볕이 내리쬐지 않아 걷기에 딱 기분 좋은 채광이다. 10월의 중순이지만 성미 급한 나무 여럿은 이미 벌겋게 단풍이 들어 있다. 앞으로 보름 후 11월이 되면 가야산의 단풍은 절정을 이룰 것이다. 그 모습을 채 못 보는 것이 못내 아쉬워 걸으면서 분 아닌 분을 삼켜본다.

 

 

 

가야면 야천리 대장경 천년관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7km 남짓의 길, 소리길은 총 3코스로 이뤄져 있다. 계곡을 넘나드는 교각과 500m의 데크,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가야산 19경 중 16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코스다. 쉬엄쉬엄 걸어 3시간가량이 소요되지만 가파른 길이 없어 어린아이도 쉬 걸을 수 있다.

좀 더 단거리 코스를 원한다면, 2코스가 시작되는 홍류동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그곳에서 채비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넉넉 잡아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이 길은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소리길의 매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구간이다. 오죽했으면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들어와 계곡 맛을 보고선, '다시는 이곳에서 나가지 않으리라' 장담했을까.

노년을 이곳에서 보내다 홍류동의 풍광에 빠져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홀연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곳엔 농산정이 자리한다. 정자와 가을 단풍,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가야산 19경 중 하나인 농산정은 '합천팔경'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비경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소리길의 하이라이트는 미륵불상에서 3코스로 이어지는 데크 길. 깎아지른 절벽 위를 관통하는 이 길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가을 단풍이 비쳐, 물빛마저 붉게 보인다 해서 '홍류동'이라 이름 붙여진 유래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합천 영상테마파크

시간여행의 시작은 가호역으로부터 출발한다. 가호역은 실제 역사가 아닌, '가호리'라는 지명에서 따서 만든 상징적인 역사다. 대합실로 들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잠시 갸우뚱한다. 시침과 분침이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 가끔은 거꾸로 생각하고, 뒤로 걸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시에서 가져온 부산한 마음을 내려놓고 테마파크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은 한마디로 살아 있는 영화 촬영 세트장이다. 대부분의 촬영 세트장이 영화나 드라마 촬영 후 폐기처분되는 것과 달리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향후 다른 촬영 장소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위해 처음 만들어진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재현해놓았다.

드라마 「각시탈」, 영화 「써니」, 예능 버라이어티 「무한도전」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는 합천의 명소다.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보던 세트장을 구경해볼 수 있다는 재미도 있지만, 이곳의 진짜 재미는 이야기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던 한국 근대 역사의 현장에 간접적으로나마 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섰던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호텔인 반도호텔 이야기,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 취임 전 2년 동안 거처했던 돈암정,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할 때까지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한 경교장 등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했던 상징적인 건물들이 자리한다. 일부 체험이 가능한 세트장은 아이를 동행한 가족 여행객들에게 더욱 흥미롭다.

1960년대 이전 남대문을 중심으로 운행되던 전차는 평일 하루 3차례, 주말 6차례 실제 운행되고 있으며, '대흥극장'에서는 그 시대, 추억의 '대한뉴스'를 상영하기도 한다. 드라마 촬영 일정이 잡혀 있는 날에는 촬영 현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데 촬영 일정은 홈페이지(theme.hc.go.kr)를 통해 미리 확인 가능하다.



 

 

 

 

 

 

 

1.영상테마파크의 입구.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상징한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이다.

2.1960년대의 전차. 실제 운행 체험도 가능하다.

3.최근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각시탈」에 등장했던 종로경찰서.

4.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위치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호텔인 반도호텔.

5.지금도 '대한뉴스'를 상영하는 대흥극장.



 

 

 

합천사누키우동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 여성들이 운영하는 일본 사누키 우동집으로 영상테마파크 내에 위치한다.

합천시가 자매결연 지역인 일본의 이토요시 현에 이들을 파견해 사누키 우동 제조 기술을 연수받아 왔다고 한다.

 적당히 숙성시킨, 쫄깃한 면발로 이름이 높은 사누키 우동은 '합천사누키우동' 이름으로 테마마크 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TRAVEL TIP

1.오전 중에 소리길을 걷고, 오후에 해인사를 둘러보는 일정이라면 발우공양 체험을 놓치지 말것.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덜어, 깨끗하게 식기를 비워내는 것이 원칙, 아이와 함께 해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공양시간은 11시 30분부터 30분간.

2.황매산 억새군락은 해질 무렵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모든 일정의 마지막으로 잡는 것이 좋다.

3.여행 전 미리 합천군(055·930-4666)에 신청하면 문화관광사의 해설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다.

   단체 여행객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며, 해설 서비스는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기획_김현명 기자 사진_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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