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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 전북 도보여행길 5곳 본문
길 위에서 만나는 '공간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전북의 도보여행길, 삶의 풍요를 완성하다!
‘삶의 질’을 논하면서 환경적인 요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없이 살 때야 매일매일 끼니 걱정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경제적인 생활 여건이 좋아질수록 사람이 몸과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공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 또한 높아지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최근 불고 있는 도보여행 열풍은 단순히 ‘여행패턴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패턴 변화’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산업화’를 강조하던 시대에는 속도와 물량이 중요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보다 빨리, 많이 보는 여행이 주류를 이루었지요. 그러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서는 자신의 보폭과 걸음속도, 시선에 맞춘 느린 여행이 대세입니다. ‘도보여행’의 열풍은 바로 이런 시대적인 맥락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지요. 도보여행의 열풍이 불면서 최근 전북에도 많은 도보여행길들이 열렸습니다. 익산의 함라산 둘레길, 완주 고종시 마실길, 전주 한옥마을 숨길, 군산 구불길, 변산반도 마실길입니다.
'길'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연결을 의미하니 필연적으로는 만남을 품고 있습니다. 행자는 그 길 위에서 자연과 문화,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소문나지 않아서 그렇지 전북의 도보여행길들은 제주 올레길, 북한산 성곽길, 지리산 둘레길 못지않게 아름다울뿐더러 각각의 길이 품고 있는 독특한 자연과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도 뛰어난 길들입니다. 도보여행길들은 비단 타 지역의 여행자들만을 불러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를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일상을 살다보면 내가 사는 공간을 쉽게 간과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별하고 쉬운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그 길에 이름을 붙여 걷노라면 내가 숨 쉬는 공간의 아름다움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법이지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은 걸어서 심신의 건강도 챙길 수 있고, 내가 숨 쉬는 공간의 소중함과 자부심도 높여주니 금상첨화입니다. 주민들의 삶의 질 또한 당연히 향상될 수밖에 없겠지요.
자 그럼, 전북의 아름다운 도보여행길들을 만나볼까요? ^^
그 길의 끝에는 금강이 있었네 <익산 함라산 둘레길>
길은 익산 함라의 삼부자(三富者)집에서 시작됩니다. 만석꾼이었던 이들은 전라도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땅을 밟지 않고는 가지 못했다 할 정도로 구한말 경쟁적으로 큰 부를 쌓았는데요. 재력에 걸맞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기 시작하지요. 세 부잣집들은 재력 쌓기만 급급하지 않고 베품 또한 경쟁적이었기에 ‘인심은 함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했던 부잣집들이었지요.
이 곳은 조선왕조와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치는 시기의 한옥의 변화를 잘 알 수 있을 뿐더러 붉은 토담길이 인상적입니다. 이 길을 지나면 함라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저 동네 뒷산 같아 온 가족이 함께 걸어도 부담되지 않는 완만한 높이의 산입니다. 평범한 뒷산 같은 산을 걷노라면 의외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발견된 야생녹차밭은 이곳이 야생차의 북방한계지임을 말해줍니다. 또 함라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익산평야 익산시 전경, 미륵사지를 품고있는 미륵산, 그리고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풍요로운 전북의 산하를 여실히 보여주지요. 함라산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명상길로 향하면 찬란한 백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웅포 고분전시관으로, 건강길로 향하면 천년 고찰인 숭림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금강이 자리하고 있지요.
마을길 지나고 숲길 지나고 논두렁 밭두렁 지나 여정의 마지막에 만나는 금강은 참 특별합니다. 오직 아름다웠으면 이름도 금강(錦江)이었을까요. 그 위로 지는 낙조는 너무 고와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가슴 가득 붉은 빛을 채웁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고, 수수한 듯 화려한 함라산 둘레길은 마음에 오랜 여운으로 남는 길입니다.
고요가 머무는 깊은 아름다움 <완주 고종시 마실길>
완주, 그곳은 참 깊은 곳입니다. 산이 깊은 곳이요, 물이 깊은 곳이요. 고요가 깊은 곳이지요. 전주에서 고작 차로 30여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청정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 도보여행 길이 열렸습니다. 바로 고종시 마실길. 고종 황제는 감을 좋아했다 하지요. 특히 완주 동상 지역에서 난 감을 특별히 좋아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감은 ‘고종시’라 불리게 됩니다. 깊은 산속, 깊은 고요 속 물소리 산소리를 벚 삼아 걷노라면 만나게 되는 감나무 무성한 마을 풍경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다른 산성이 외적의 침입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조성되었다면 완주 위봉산성은 유사시 주민들의 대피는 물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위봉폭포와 깊은 산속의 아름다움을 담아 고요하지만 정열적으로 피워내는 금낭화 군락지,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학동마을 등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곳입니다. 아름다움에도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고종시 마실길은 ‘깊은 아름다움’이 머무는 곳입니다.
생태 복원의 모범답안 <전주 한옥마을 숨길(둘레길) >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 그러나 의외로 한옥마을 숨길(둘레길)을 아는 사람들은 드문 듯합니다. 전주 한옥마을 숨길은 한옥마을에서 시작하여 전주천을 한바퀴 돌아보는 코스입니다. 요즘 생태관광지로 울산 태화강이 인기라지만, 사실 생태 복원의 모범 답안으로 손꼽히는 효시는 바로 전주천입니다. 전주천은 상류는 대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이라 믿기지않을만큼 그냥 마셔도 되는 1급수를 자랑합니다. 정겨운 한옥을 지나 천변을 따라 걷노라면 아름다운 억새밭과 전주 8경으로 손꼽히는 한벽루, 유서깊은 사찰인 동고사,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을 만나게 됩니다.
고요한 나래를 접어 강 아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새들, 총총 돌다리 건너 강 이쪽 저쪽을 오가는 사람들, 나무 그늘 아래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 그리고 산보를 나와 억새밭을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은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자연을 아름답게 보존했을 때 사람들의 삶 또한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길이지요. 숨 한번 크게 쉬기도 두려운 도심 속에서 청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니 전주라는 도시의 또다른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구불구불 격변의 역사를 걷다 <군산 구불길>
일제강점기 시절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탁류’였습니다. 격변하는 시대적 소용돌이 한 복판에 있었던 군산. 일본식 가옥이었던 히로쓰 가옥이나 군산 세관, 일본은행 지점, 째보 선창 등 그곳에는 지금도 그 시대를 추억할만한 근대문화유적이 가득합니다. 구불길에는 비단 일제 강점기 시절의 추억만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워 비단강으로 불린 금강(錦江) 하류에 위치한 덕에 갈대꽃의 노래 위로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군무를 추고, 임피와 대야의 들길을 걷노라면 고향집의 정취로 가득한 시골마을 풍경을 만날 수 있지요.
군산 구불길을 걷노라면 지금도 격변은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젠 재개발 속에 영원히 그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는 해망동 달동네와 새 시대를 예견하는 새만금 방조제의 대비! 과연 10년 후의 군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요? 10년 후의 모습도 궁금해지는 길이 바로 군산 구불길입니다.
거친 사포위를 크레용이 지나가듯 <변산반도 마실길>
지금처럼 번잡하지 않던 시절, 마실은 사람 냄새 풍기러 다니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바람 따라 거닐며 사람을 만나면 여유롭게 정겨운 말을 건네는 풍경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에 바람이 들어갈 것만 같으니요.
듣는 것만으로도 나긋나긋한 이 마실이 변산에 오면 뜨악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평평하게 닦인 길만을 다녔다면 변산의 마실길은 발바닥 세포들을 한꺼번에 깨울 듯이 들쑥날쑥이기 때문이지요. 몽돌밭에 마음까지 둥글어지다가도 불현듯 나타난 칼바위가 세운 서슬에 발걸음이 멈출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잠시입니다. 고생스런 길을 견디고 나면 고운 모래밭이 반기는 변산의 마실길입니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땅입니다. 절경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함에도 화려함보다는 투박함으로 다가오는 곳. 산과 들 그리고 바다의 매력을 모두 품었으나 요란하지 않고 절제된 단아함이 깃든 변산입니다. 이곳의 독특한 질감이 주는 매력은 거부하기 힘듭니다. 마치 거친 사포 위를 지나간 꼬마들의 크레용 자국 같다고나 할까요!
똑같은 세월을 보내왔음에도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변산을 타고 흐른 세월은 변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빚어냈습니다. 하루에 한번 불타는 노을은 적벽강을 붉게 물들이고, 하루에 두 번 제 시간 맞춰 오가는 파도는 채석강에 켜켜이 흔적을 새깁니다. 채석강과 마주한 혹자는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며 감탄하고, 격포해변과 마주한 또 누군가는 이별이 온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제 몸을 사리기도 하지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세월을 건너온 변산의 적벽강, 채석강, 격포해변 등은 어떤 표현을 갖다 붙여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인간의 언어로 과연 표현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가슴 벅차게 심장으로 주워 담을 뿐입니다.
길을 걸으며 전북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는다
걷는 것은 내가 서있는 그곳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과 코가 그 곳의 모습과 향을 기억하고, 손과 발이 그 길과 촉감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죠. 소개해드린 전북의 길의 모습도 걸어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느리고 더디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 깊숙히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으니 말이죠. 올 여름, 여러분도 전북의 길을 걸으며 전북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에 담뿍 담아보시는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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