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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강점기 하시마 '감옥섬'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10. 6. 07:53

조선인 800명 강제동원… 日帝 강점기 하시마 '감옥 탄광'…

日, 강제동원은 침묵한 채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정부, 하시마 탄광 조선인 강제동원 보고서 첫 공개]


사망 확인된 조선인만 122명 - "탈출하려 신체 절단 생각도" 생존자 증언까지 나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4일 일제 강점기 하시마(端島) 탄광의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 떨어진 하시마(6만3000㎡)는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으로 불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은 해저 탄광이라 깊은 곳은 지하 1000m가 넘었다. 작업 도중 해수가 갱내로 쏟아져 작업자들의 피부는 항상 짓무르고 염증이 심했다. 탄광 안에서는 유독가스가 암벽을 뚫고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가스돌출' 현상도 잦았다. 이런 곳엔 일본인 대신 조선인과 중국인이 투입됐다. 한 생존자는 "굴 안은 바로 서지 못할 정도로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다"고 했다.

하시마는 외부와도 철저히 격리됐다. 탈출을 시도했던 일부 노동자들은 대부분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일부 생존자는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일제강점기 하시마(端島) 탄광의 한국인 강제 동원 실태를 정리한 정부 보고서가 4일 나왔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 떨어진 하시마는 ‘감옥섬’으로 불렸으며, 800여명의 한국인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당시 하시마에는 아파트와 같은 고층 건물이 지어졌는데, 조선인은 해안에 있는 건물 지하에서 생활했다. 섬 주변의 파도가 매우 높아 바닷물이 숙소로 쏟아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다수는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잔류

방사능에 노출됐다.

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포함한 근대 산업시설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위원회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하시마에 많게는 800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했다. 위원회가 피해자로 공식 확인한 인원은 134명, 확인된 사망자는 12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