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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9. 27. 09:05

 

무난한 여행의 조건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로컬리즘이다. 현지를 만끽하자는 것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 가운데 가장 존중하고 아끼는 공간, 행위, 그 맛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편리하든 다소 불편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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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로컬리즘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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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피크 타워

실로 오랜만에 홍콩에 갔다. 이전 여행에선 홍콩 하버에 떠 있던 카이탁공항에 내렸고, 이번에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 첵랍콕 국제공항이 개관한 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듬해인 1998년의 일이니 그야말로 ‘롱롱타임 어고우’ 적 이야기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홍콩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제일 많이 구사했던 문장이 ‘원스어폰어타임, 롱롱타임어고우’였다.

그들은 내가 카이탁 공항을 ‘공군 비행기가 착륙하듯 아슬아슬하게 내려앉곤 했던 공항’으로 추억하면 키득키득 웃으며 ‘그건 맞는 말이지만 역시 옛날 이야기’라며 옛 홍콩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세월은 흘렀고 도시의 외모는 변했지만, 과연 홍콩의 로컬이 변질될 수 있을까? 영국이 99년 동안 구축해놓은 문화가 홍콩차이나 체제 하에서 단박에 달라질 수 있을까?

그건 생각할 여지도 없는 호기심에 불과하다. 규모가 더 커졌지만 홍콩의 스타일은 역시 홍콩아일랜드의 빌딩과 침사추이를 중심으로 하는 구룡반도의 빈티지, 우아하고 격조높은 고층호텔들과 호텔 안에서 이뤄지는 진기명기 먹거리와 볼거리들, 무표정한 노인 종업원들의 얼굴만 보아도 믿음이 가는 명불허전 딤섬 차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쇼핑 천국 홍콩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지만 막상 가 보니 풍문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의 모든 상가들은 여전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이제 우리나라에도 안들어 온 브랜드가 없어서 굳이 홍콩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뭘 모르고 한 소리’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모든 ‘라인’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쇼핑센터의 윈도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트렌드세터들이 여전히 홍콩을 들락거리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급스러운 홍콩 스타일투어의 세 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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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스타일 투어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첫째 빌딩이고 둘째 빈티지고, 셋째가 음식과 차다. 그런데 어디를 가야 최고의 로컬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디가 좋은 호텔인데? 그 많은 딤섬 집 가운데 어디를 가야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을까? 애프터눈 티는 어디에서 즐기는 게 좋을까? 가이드북에 등장하는 곳에 가면 되는 걸까?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홍콩의 30대 전문직 여자에게 힌트를 얻기로 했다. 그녀는 여행을 위해 단순 소개받은 전문직 여성으로, 추천만 했을 뿐 한번도 둘이 동행하지는 않았다.

추천받은 곳을 향하기 전 일단 공중에서 바라본 홍콩의 전경이 궁금했다. 홍콩을 내려다 보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 가는 방법은 걸어서(홍콩에도 둘레길이 있다), 버스를 타고, 승용차로, 그리고 트램 등이 있다. 현지인들은 주로 승용차를, 단체관광객들은 버스를, 개인 또는 소규모 여행그룹은 트램을 이용한다. 낭만적인 산악열차 트램의 운행이 시작된 것이 1888년의 일이고 그동안 단 한 차례의 사고도 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면 또 하나의 피크가 솟아있다. 전망대다. 홍콩달러 30$를 내면 이곳 옥상에 올라갈 수 있다. 홍콩을 한 눈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행이 그렇다. 어디를 가든 일단 높은 곳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볼만 하다. 힐링은 꼭 자연, 멘토 앞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서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그 어느곳에 있든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필수 화두다. 그것이 없는 여행은 도무지 고급스럽지도, 스타일리시하지도 못하다.

홍콩은 크게 구룡(KOWLOON)과 홍콩아일랜드로 구분된다. 예전에는 구룡에는 주로 빈티지가, 홍콩아이랜드에는 주로 마천루가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제 구룡에도 만만치 않는 기록을 지닌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빌딩은 역시 IFC(International Finance Center), 중국은행, HSBC, 스탠다드차타드 등 금융 시설들을 들 수 있다. 빌딩 속에서 홍콩의 마천루를 감상하고 싶다면 IFC 50층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그곳은 화폐박물관과 전망대로 운영되는데 홍콩이 얼마나 커다란 빌딩 숲인지를 확인해 주는 아찔한 공간이다. 홍콩 빌딩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건물과 건물을 이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덥고 습한 지역이 만든 이색 풍경이기도 한데, 시민과 여행자들은 더운 거리로 나가지 않고 빌딩과 빌딩을 돌아다니며 결국 ‘쇼핑’에 몰두하게 된다.

딤섬과 애프터눈티 타임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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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더어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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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에서 딤섬을 생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딤섬은 무려 3000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중국 특유의 문화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이 조막만한 만두 속에 중국과 홍콩의 입맛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홍콩의 그녀는 홍콩 딤섬의 지존 세 곳을 추천해 주었다. 예만방, 육우다실, 용기 등이 그곳들이다. 육우다실로 결정한 것은 그곳이 홍콩의 핫플레이스인 란콰이퐁 스탠리 스트리트(Stanley St.)에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다기와 차를 파는 집으로 딤섬은 일종의 사이드 메뉴였으나 그 맛의 출중함이 알려지면서 차보다 딤섬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명소가 되었다. 딤섬은 어딜 가나 차와 함께 먹게 되는데, 육우다실에서는 찻값도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란콰이퐁은 매우 홍콩스러운 다운타운이다. 다국적 문화가 혼재되어 있고 세련된 바가 즐비하다. 라운지가 문을 여는 저녁이 시작되면 홍콩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테라스 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며 홍콩의 밤거리를 두리번 거리곤 한다. 우리의 이태원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여행 중 하루 저녁을 란콰이퐁에서 보냈는데, 어느 카페에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자 거리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홍콩의 고급스러운 문화 가운데 애프터눈티가 있다. 영국인과 홍콩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하나이지만 홍콩을 여행하는, 특히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애프터눈 티타임은 여행의 커다란 만족을 주기에 충분한 콘텐츠다. 애프터눈티는 영국 문화가 만들어 낸 티타임 가운데 하나다. 산업화가 시작되었던 18세기, 19세기 때 노동자들의 에너지 충전과 휴식을 준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따뜻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풍속이다.

출근하면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해야 하니 아침 식사를 천천히, 든든히 먹고 나가라는 뜻에서 브랙퍼스트티가 생겼고,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 사이에는 우리의 새참 개념으로 차 한 잔에 스콘과 샌드위치, 타르트, 초콜릿 등을 곁들여 먹는 시간을 갖도록 한 것이 애프터눈 티다. 티 브레이크도 같은 개념이다. 그렇게 시작된 애프터눈티는 일상에 스며들어 가정 주부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때는 가급적 오후에 시간을 맞추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문화를 즐기자 이제 홍콩의 대부분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애프터눈 티를 상품화해서 세트 메뉴로 팔기에 이른 것이다.

더어퍼하우스, 이스트홍콩, 페닌슐라호텔, 1881헤리티지(Heritage, 1881년에 홍콩해양경찰대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 소규모 호텔과 레스토랑, 고급 쇼핑센터로 개조한 곳)를 비롯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애프터눈 티를 판매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문화답게 형식도 똑같다. 홍차가 나오고 설탕이 세팅되고 3단 트레이에 스콘과 과자, 꿀, 클로디드 크림, 잼, 그리고 과일까지 올라온다.

나는 내가 묵은 호텔 ‘더어퍼하우스’의 ‘카페 그레이 딜럭스 ‘의 전망 좋은 창가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애프터눈티에 등장하는 메뉴들을 보며 양이 조금 많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차와 함께 먹어보니 달달한 메뉴가 하루 여행의 피로감을 일거에 씻어주고 저녁 시간의 외출에 대한 또 다른 에너지를 주기에도 충분했다.

홍콩스타일투어는 현지인이 선호하는 공간과 맛과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그 어느 여행보다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책에서 일러주는 대로, 여행사에서 흔들어 주는 깃발을 따라서 걷고 먹고 보고 마시는 것도 무난한 여행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현지에서 태어나 현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가르쳐 주는 리얼 로컬리즘은 색다른 여행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로컬리즘 투어가 가능하려면 현지에 친구나 친척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 아니라면 호텔의 홍콩인 매니저에게 객관적인 가이드를 부탁해도 된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호텔의 부대시설을 포함한 복수의 추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영근(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47호(12.10.0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