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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봉평 메밀꽃길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9. 27. 09:01

소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효석이 서술했던 메밀꽃 들판의 풍경은 가슴 깊은 곳에 콕 박혀있어서 초가을만 되면 그곳에 가고싶어 엉덩이가

들썩인다. 매년 다녀와도 질리지 않는 문학여행. 첫사랑이 살아있는 들녘, 봉평 메밀꽃 들판으로 지금 바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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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되새겨보는 애틋한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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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 한국단편전집에서 <메밀꽃 필 무렵>을 읽었을 때는 메밀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친아버지일지도 모를 허생원과 흐드러진 메밀꽃밭을 함께 걷는 동이의 처지가 가련했고, 허생원 일생의 유일한 애인이었을 성서방네 처녀의 지난 세월이 궁금하고 애틋했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봉평의 메밀꽃 들판은 이제 전국민이 아는 유명 여행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소설보다 메밀국수장터가 더 인기있는 시절이 됐다.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메밀꽃 구경과 메밀국수 먹기. 꽃구경 가기 전에 간만에 소설 줄거리나 살펴보자.

허생원의 직업은 장돌뱅이다. 그는 장이 서는 마을을 떠돌며 사는 남자다. 젊었을 때는 매일 발품깨나 팔았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멀리 다니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어느날 장에 나가 물건을 팔고는 자신이 묵고 있던 주막 충주댁네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동이’라는 이름의 젊은 장돌뱅이 하나가 충주댁과 시시덕거리고 있었는데, 순간 질투심에 불이 붙는 그는 동이를 나무라며 손찌검까지 해버린다. 동이는 너그러운 청년이었다. 그는 허생원의 무례함을 이해하고 그를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생원의 당나귀가 괴롭힘을 당하자 잽싸게 달려가 허생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당나귀를 보호한다. 허생원은 동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곤 다음 목적지인 대화장까지 칠십리 밤 길을 동이와 함께 걷는다. 봉평 메밀꽃 들판은 바로 그 장면에서 등장한다. 허생원은 소금꽃이 내린 것처럼 밝고 흰 밭길을 걸으며 동이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한다. 메밀꽃이 활짝 핀 어느날 밤 봉평 성서방네 처녀와 맺었던 하룻밤의 인연도 고백한다. 그러나 허생원에게 그 하룻밤은 요즘 세태인 ‘원나잇스탠딩’이 아니었다. 비록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워 그 처녀와 인연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평생 그 처녀를 그리워하고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둔 채, 그 처녀를 에너지 삼아 살아왔다.

동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동이는, 자신은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으며, 의붓아버지와 살다 집을 나와 장돌벵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허생원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허생원이 개울을 건너다 발을 헛뎌 넘어지면서 잠시 끊어졌다.

동이는 허생원을 업고 걸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는데, 동이의 등에 업힌 허생원은 동이 엄마 친정이 자신이 선서방네 처녀와 인연을 맺던 봉평이라는 사실, 동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면서 동이가 어쩌면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요동치는 심장을 달랜다. 소설은 허생원이 동이 엄마가 지금 살고있다는 제천으로 발길을 돌리며 끝이 난다. 그 뒷얘기는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전개되고 결말지어졌다.

첫사랑 추억해보기, 그러나 옆 사람과 싸우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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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현대막국수, (아래)풀내음 메밀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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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풀내음 , (아래) 메밀꽃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출발점에 서 있는 9월의 어느날 봉평으로 달려가 보자. 밤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새하얗게 올라온 메밀꽃 들판을 걸으며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사실 평생 잊지 못하는 존재,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첫사랑 아니던가? 실제로 이 길을 걸으며 첫사랑을 떠올려 본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끝내 붙잡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또 어떤 이는 그때 그(녀)와 헤어진 게 인생 최대의 축복이었음을 깨달으며 앞 뒤로 걷고 있던 오늘의 짝을 와락 끌어안는다. 첫사랑을 추억한 뒤, 그것도 밤이 내린 메밀꽃밭을 걷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은 역시 메밀국수전문점이다. 옛사랑이 오늘의 사랑이 아니라 다행이어서, 첫사랑을 20년째 마주하고 있는 오늘이 지긋지긋해서, 모두 내려놓고 인생의 친구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는 의미에서 메밀전병에, 편육에, 메밀로 만든 막걸리 한 잔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물론 이 길을 오늘의 애인과 함께 걸을 예정이라면,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읽어본 적도,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척 하는 게 그 밤을 무사히 넘기는 지혜일 것이다.

메밀꽃을 주제로 한 봉평 여행은 낮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잡는 게 좋다. 대낮에는 봉평 주변의 허브나라, 휘닉스파크, 무이예술관 등을 기웃거리다 해질녘에 봉평으로 들어가 효석문화마을, 이효석문학관 등을 자세히 살피고 어둠이 내리면 꽃밭을 걷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봉평메밀꽃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소설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커플 여행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효석문화제를 피해서 봉평으로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2012년 제14회 효석문화제는 이미 지난 16일에 막을 내렸다. 지금 가면 인파에 시달리지도, 과거로 인해 싸움 날 일도 없다. 봉평의 메밀꽃 들녘은 봉평군에서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라 축제가 끝나도 한동안은 메밀꽃 흐르러짐 풍경을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메밀꽃 산책이 끝나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의심할 것도 없이 메밀국수집으로 직행하고 볼 일이다. 오늘 아니면 또 언제 봉평에서 밤을 보낼 것이며, 또한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메밀국수 맛을 볼 수 있을까. 봉평 메밀국수의 터줏대감은 역시 현대막국수다.

봉평 장터 한쪽에 있는 이 집은 여행자들보다 평창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동네 맛집이다. 비법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집의 인기 비결은 역시 장과 육수에 있다고 한다. 사과, 배, 무, 양파 등의 즙과 이 집만의 장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육수는 한마디로 개운하고 고소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 풀내음이라는 집도 인기 좋다.

이효석문학관으로 가는 길 물레방앗간 뒤편에 있는 메밀 음식 전문점인데, 골동품과 오래된 생활 용품들을 식당 곳곳에 갖다놓아 손님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메밀국수와 전병, 메밀 부침개, 메밀묵, 메밀묵말이 등의 메뉴가 있고 감자떡과 메밀차도 판다.

여행정보

교통 승용차 영동고속도로 장평IC 또 면온IC - 6번 국도 20여 분

대중교통 장평버스터미널 – 봉평행 시내버스

숙박 바람이 불어오는 곳

무이예술관 건너편에서 무이1리 쪽으로 가다 보면 바람개비 간판이 예쁜 펜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있다. 이곳은 객실 4개가 전부인 국내 유일의 ‘유랑 펜션’. 객실은 4개 뿐이다. 일종의 전세형 펜션. 시설보다는 펜션이 갖고있는 특유의 감성과 주인의 친화력이 재산이다. 시골 사진관도 운영한다. www.moodda.net

[글 이누리 (프리랜서) 사진 평창군청, 이책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