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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사전

[스크랩] 인천 상륙작전 화보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2. 9. 17. 23:16

仁川 上陸作戰 大勝 62 周年

1950년 9월 15일

261척의 대수송단을 이끌고인천앞바다에 도착한

맥아더 장군이 그의 기함 마운트 매킨리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의 용단

맥아더원수가 인천상륙 작전을 계획했을 때,

미군 수뇌부는 동경회의('50년 8월 25일)에서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와

항공지원의 항속거리밖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크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 때 맥아더 원수는

"북한군 지휘관들도 당신들과 같이 훌륭한 장군이다.

여러분이 인천상륙작전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북한군의 장군들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것이며,

따라서 인천은 방비가 소홀할 것이다.

고로 이 허점을 친다면 성공할 수 있다.

사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

인천 상륙작전은 유엔군 제7 합동 상륙기동 부대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전함 “미조리”함과 순양함,

구축함 등 총 261척의 함정과

연합상륙군인 미 해병 제1사단과 한국 해병 제1연대,

미 육군 제7사단과 한국 육군 제17연대로 구성하여

총병력 7만5천명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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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작전 요도

상륙작전 요도

1950년 9월 12일, 부산항, 한국 해병대와 제 17연대 및,

미 해병대 병사들이 배에 승선하고 있다.

작전 전모 항공사진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하는 기함 마운트 매킨리 함상의

맥아더 장군

공격용 사다리를 갖춘 상륙함정이 인천으로 향하고 있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하는 유엔군

인천에 상륙하는 유엔군

인천에 상륙하는 유엔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창이 닫힙니다

인천의 관문인 월미도에서의 소탕작전

인천항에 발을 내디딘 맥아더 원수

9월 16일 01:30 인천해두보를 완전 확보하게 되자

맥아더는 인천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인민군들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1950. 9. 27.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1950년 9월 23일, 유엔군의 서울로 진입

서울 시가전

서울 시가전 후의 종로거리. 멀리 화신백화점 건물이 보인다.(1950.9.29)

미해군장교가 서울의 주한 영사관에 성조기를 올리고 있다

1950.9.28 해병대용사들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계양하고 있다

1950. 9. 29. 유엔 깃발이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맥아더 장군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전경

인천상륙작전 자유수호의 탑

맥아더장군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에 묵념하는 역전의 용사들

출처 : 신수 ,, 편히 쉬시며 행복한날 되세요,
글쓴이 : 신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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