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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사고는 왜 슬로모션처럼 기억될까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3. 6. 23. 22:18

 

 



교통사고처럼 극심한 공포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사고 당시 사물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말한다.
사진은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슬로모션처럼 그래픽 처리한 것.

[사이언스 in 뉴스] 왜? 감정이입된 강렬한 기억때문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사고 순간 사물이 '슬로모션(slow motion)'처럼
느리게 움직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도 수년 전 당한 교통사고를
회상할 때마다 보닛이 마치 종잇장 접히듯 천천히 구겨졌던 것을 기억한다.
일부에서는 교통사고처럼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면 뇌와 눈이 고속촬영카메라처럼
갑자기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본 장면들을 모두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정말일까.

◆공포의 순간 슬로모션 없어

사물이 슬로모션으로 보이는 장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명해졌다.
주인공 네오는 사물을 총알과 같은 속도로 보게 된다.
아무리 적이 빨라도, 심지어 총알이라도 모두 슬로모션처럼 보이니 쉽게 피할 수 있다.
미국 베일러 의대 데이비드 이글맨(Eagleman) 교수는 실제로 사람들이 이처럼 사물을
슬로모션처럼 인식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눈·뇌가 그렇게 보진 못해

연구팀은 교통사고와 같은 극도의 공포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댈러스에 있는 놀이기구를 찾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46m 상공에서 시속 112㎞로 자유낙하를 하는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이때 사물이 슬로모션으로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목에 LED(발광다이오드) 숫자표시 장치를 차게 했다.
LED가 점멸하면서 숫자가 나타나는데 지상에서는 도저히 어떤 숫자인지 알 수 없는 속도였다.

실험결과, 놀이기구를 탄 실험 참가자들도 모두 숫자를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속촬영카메라는 같은 시간에 일반 카메라보다 더 많은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고속으로
움직이는 사물을 하나하나 포착해낸다. 알려진 것과 달리 공포의 순간 우리 눈과 뇌는
고속촬영카메라로 돌변하지는 않았다.

◆감정 이입된 기억이 원인

그렇다면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증언은 무엇일까.
이글맨 교수는 지난달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슬로모션은 기억의 조작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사물을 슬로모션으로 인식(perception)한 것이 아니라 슬로모션으로 기억(recollection)했다는 것.

일반적으로 기억은 뇌의 '해마(hippocampus)' 부위에 저장되고 재현된다.
이글맨 교수는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는 감정과 관련된 '편도(amygdala)'라는 또 다른
뇌 부위도 기억에 관여하게 된다"며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일반 기억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에
마치 사물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인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마'와 함께 '편도'부위가 관여

신경과학계에서는 이런 기억을 '섬광기억(flashbulb memory)'이라고 부른다.
1977년 신경과학자 로저 브라운(Brown)과 제임스 컬릭(Kulik)은 케네디 암살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당시 상황을 장면 하나하나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고 기억이 섬광처럼 떠오른다고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미 뉴욕대의 엘리자베스 펠프스(Phelps) 교수는 9·11 테러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서도 이 같은 섬광기억 현상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9·11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당시를 회상할 때 편도가 눈에 띄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도움

편도는 위협상황에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갈 것인지(fight or flight)'를 결정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뇌 부위. 감정이입 신경시스템을 통해 위협 신호를 보내고 아드레날린과 같은
호르몬을 분비해 위협에 대처하게 한다. 따라서 사고 당시를 기억할 때 편도가 활성화된 것은
당시의 공포 상황을 다시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펠프스 교수는 "결국 공포 상황의 기억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실제 일어난 일뿐 아니라 당시의 감정도 함께 떠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9·11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시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섬광기억에 대한 연구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겪는 정신적 후유증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자는 보닛이 슬로모션으로 구겨지는 기억 탓에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치료의 한 방법은 섬광기억이 감정 때문에 왜곡되고 과장된 기억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나중에 케네디 암살현장 목격자들을 다시 조사한 결과 섬광기억이 다른 기억보다
더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기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슬로모션은 어디선가 본
사고 장면이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와 결합해 만들어진 괴물일지도 모른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당시 슬로모션처럼 사물이 천천히 움직였다고 말한다.
미 베일러 의대 이글맨 교수는 공포를 유발하는 자유낙하 실험을 통해 실제로 공포를 느낄 때
빠르게 변하는 LED 숫자를 알아볼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공포 순간에도 LED 숫자를 인식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뇌나 눈이 고속촬영카메라처럼 움직인 게 아니라 기억에 감정이 이입되면서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즉 슬로모션은 인식된 게 아니라 기억된 것이란 것.
미 베일러 의대 제공=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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