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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폐루 본문
남미에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일정이 워낙 빠듯해서 정신이 없었고, 마주친 풍경들이 워낙 빼어나서 또 정신이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정신없게 만들 그 압도적인 풍경들을 글과 사진은 오롯이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저 남미로 떠나고자 하는 어느 누군가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재촉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란항공 02-775-1500 아메리카 라인 투어 02-777-6858
OUTH AMERICA
Great Landscape 남미가 당신에게 선사하는 풍경들
커다란 원주민 사진이 인상적인 잉카 레일의 내부
Peru 하늘로 열려진 신비의 성채
페루를 여행한다는 것은 안데스 지역의 페루를 중심으로 인디오가 세웠던 나라인 잉카제국의 흔적과 마주한다는 의미다.
거대한 제국이 축조했던 거대한 문명의 가장 눈부신 흔적이자 완강한 신비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의 몫이다.
마추픽추를 만나려면 우선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zco를 거쳐야 한다.
제국의 수도에서 시작하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Lima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 쿠스코로 날아들었다. 쿠스코 공항을 나서며 살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쿠스코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고산병 증세를 호소했다.
숨을 쉬기 어려웠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해발 3,400m 지점에 위치한 쿠스코에는 확실히 공기가 희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별다른 증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나라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남미의 도시들에서 광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관공서나 성당 같은 주요한 건물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대개는 광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 있다.
도시 탐험도 광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쿠스코 역시 마찬가지다. 쿠스코 여행의 거점인 아르마스 광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광장은 잉카 시대의 비라코차 신전 자리에 세워진 대성당과 잉카 11대 황제의 궁전이었던 곳에 건립된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 그리고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원주민의 터에 들어선 정복자의 건물에 집중했고, 현지인들은 광장 곳곳에 놓인 벤치에서 한가로이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해발 2,800m 지점의 우루밤바Urubamba에서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났다.
쿠스코에서 옮겨온 시간이 원체 늦었던 데다 그 다음날 올라타야 하는 기차의 출발 예정 시각이 원체 일렀던 탓이다. 차량은 미명에 호텔을 출발했다.
곧게 뻗은 도로 주변으로 낮은 담장의 집들이 이어졌다. 원주민 몇몇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아침을 서둘러 맞는 사람들이었다.
길을 도와 달린지 30분 만에 올란타이탐보Ollantaytambo 기차역에 닿았다. 파란 바탕에 노란 글씨가 쓰인 기차 '페루 레일'과 흰 바탕에 붉은 글씨가 쓰인 기
차 '잉카 레일'이 철로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잉카 레일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빈 좌석을 찾기 어려웠다.
벽면에 붙은 원주민의 대형 얼굴 사진이 생동했다. 새벽 6시40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창밖으로 강과 밭과 산이 갈마들었다.
산발치에 낮게 엎드린 집들이 새끼손톱만 했다. 산과 구름이 때때로 교접했다. 구름의 일부는 산의 등줄기까지 흘러내렸다.
땅 위를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구름이었고, 산의 입장에서 따지자면 그것은 안개였다. 안개와 구름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했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험준한 산마루가 기차에 바싹 다가섰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지금 마추픽추로 가는 중이다.
페루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마추픽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 리스트의 단골손님이다.
이 '새로운 7대 불가사의'를 보기 위해 해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마추픽추의 아랫마을인 아구아 칼리엔테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올란타이탐보역.
기차가 떠나기 전 관광객을 상대로 모자와 기념품 따위를 팔기 위해 원주민 행상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함
아침 8시, 기차는 마추픽추의 아랫마을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에 멈춰 섰다. '뜨거운 물'이라는 뜻의 마을은 역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했다.
상점과 식당들도 선로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 상점과 식당들은 외지인들, 정확히 말하자면 마추픽추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생계를 전적으로 의탁했다.
관광객들에게 마추픽추가 감탄과 경외의 대상이라면 마을의 주민들에게 마추픽추는 생계의 방편이었다. '신新 7대 불가사의'를 두고 목적과 수단이 교차했다.
해발 2,400m의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동 수단에 한번 더 의지해야 했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갈지자형의 길을 주저 없이 나아갔다.
버스는 열 번 이상 좌우로 크게 꺾였다. 그리고 경사진 길의 끝에서 버스는 사람들을 부려 놓았다. 마침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남미의 강렬한 햇살과 그 햇살보다 더 강렬한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을 날카롭게 찔러 왔다.
마추픽추에는 이미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앞세우고 비탈면을 따라 건설된 옛 도시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태양의 신전과 왕녀의 궁전, 계단식 밭과 수로, 해시계와 묘지, 주거지와 학교(로 추정되는 유적) 등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했던 옛 문명 앞에서 끝없이 탄복했다.
마추픽추 탄생의 비밀과 흥망성쇠를 두고 여전히 다양한 설들이 옥신각신한다.
저마다 은둔의 요새 혹은 군사 도시 혹은 피난용 도시라고 주장하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존재였다면
굳이 마추픽추에 불가사의라는 이름표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모호함인데, 그 모호함은 치열한 상상력을 불러온다.
때로는 파헤쳐지지 않아 그 속내를 온전히 알 수 없을 때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다.
지난 2000년 5월 마추픽추를 처음 대면했을 때도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추픽추의 역사적 배경과 조성 원리, 그리고 낱낱의 유적에 관한 추측과 안내는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런데, 마추픽추의 감동은 활자와 사진과 영상을 통해 퍼트려진 친절한 정보가 길어다주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이거나 혹은 객관에 도달하고자 하는 지식은 마추픽추의 매력을 조금도 포획할 수가 없다.
마추픽추와 실제로, 최초로 눈이 마주쳤을 때 즉각적이자 즉물적으로 전해지는 전율일 따름이다.
눈부신 문명을 축조했던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는 해발 3,400m 지점에 위치한다.
보통 마추픽추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인식되지만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건물들과 태양의 신전이 대표적이다
마추픽추의 유적들을 둘러보는 여행객들.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 표고가 낮지만 햇살은 훨씬 강렬하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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