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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경남북,부산,대구)

오륙도 & 이기대

꿈꾸는 구름 나그네 2018. 2. 22. 15:06



오륙도 & 이기대



설 지난 닷샛날 찾은 겨울바다 오륙도

전란과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에겐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을 섬들은 고요한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침묵하고 있었다

청명한 날이라면 한낮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일 해면이 옅은 해무에 가렸지만 풍광은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왔다

입춘 지난지도 보름이니 직접 몸은 느끼지 못하지만 봄은 분명히 우리 가까이 찾아왔을 터이다

     

연전의 유람선은 접안이 어려운지 심하게 흔들리면서 등대섬에다 위태롭게 날 내려놓았다

살아오면서 그때 짧게 발을 디뎠던 것이 유일한 오륙도 체험이었다

그마저도 섬을 한 바퀴 돈 유람선에 바로 올라야했기 때문에 등대 안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용호동 승두말 선착장에선 일렬종대로 선 오륙도가 하나의 섬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산항에서 바라보면 섬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기록에는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라 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육지에 가까운 방패섬과 솔섬 두 섬은 아랫부분이 하나로 붙어있어 썰물일 때 우삭도란 하나의 섬이 된다

근래에 들어선 명소 스카이워크는 마치 오륙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가깝지만 오늘은 평일인 탓에 

붐비지 않았다무인도였던 오륙도에 등대가 들어선 건 지난 70년대 초반.


낭만과 애환이 교차하는 등대지기 일터였을 오륙도도 반백년 역사를 뒤로하고 시대의 조류에 밀려 

이제 곧 무인화 시스템이 도입될 전망이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란 노랫말만큼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가요가 또 있을까

노래를 통해 오륙도는 더욱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섬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에게 그만큼 고마움을 

표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원래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던 노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흥행에 실패하여 부산으로 옮겨왔던 것인데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래를 통해 더욱 랜드마크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오륙도는 멀리 태평양 수평선에 해가 솟아오르면 

웅크린 바다표범처럼 검은 바위가 몸체를 드러내면서 위용을 자랑한다.


지질학적으로 1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선착장이 있는 승두말과 오륙도는 하나로 붙어있었다

그랬다가 오랜 세월 파도에 약한 부위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섬으로 변했던 것

지금도 섬과 섬 사이가 서로 붙을 듯 가깝고 지질도 육지와 다르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곳 승두말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일제 때의 뼈아픈 역사도 간직한 곳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지구촌의 적이 된 일본은 세계가 연합하여 본토를 공격해올 위협을 느끼면서 

공해상의 길목을 지킬 필요가 절실했다

그래서 이곳 승두말에다 나바론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해상 포진지를 16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다

산자락을 평평하게 깎아내고 땅 위에 2개의 출입구가 달린 거대한 거푸집을 만들어 이중으로 철근 콘크리트를 

양생시켜 원형터널공법으로 견고하게 만든 진지였다.


일제는 포진지를 비밀리에 만들기 위해 일꾼으로 쓸 한국인을 일본으로 밀항시켜 주겠다고 속여 

배에 태운 다음 바다를 맴돌다가 밤중에 포진지 공사장에 내려놓고는 일본이라고 속여 작업을 시켰다

포진지시설을 갖춘 후 본래대로 흙을 덮고 산을 만들어 주변과 같은 나무를 심어 감쪽같이 위장하였다

포진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여 년 전 신문에 의해서다.


2000년엔 방송으로도 공개되어 천인공노할 일본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난 승두말을 용호농장으로 부르던 시절에 처음 이곳을 찾았다

천형으로까지 취급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수용한 부락으로 업무차 몇 차례 현장을 방문했던 것이다

당시 집단촌을 이끌고 있는 몇몇은 자신들의 신병을 권력으로 착각했는지 전기요금 체납과 부정한 전기사용을 

스스럼없이 해대고 있었다.


의약품 보급이 열악했던 시절인지라 이곳 집단촌 피부약이 바깥세상에서 인기를 끄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다

아내에겐 오늘 오륙도 나들이가 탐탁지 않았을 터이다

자신의 생일에 그것도 고희연이라 불리는 일흔 번째 생일에 지구촌 명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아니니 

더욱 그러했을 터이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다는 사람을 이끌고 황량한 겨울바다라니속으론 기가 찼을 것이다.  

 

난 신문이 전하는 이기대 피톤치드 방출량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부산의 여러 공원과 심지어 전국의 휴양림까지 비교해도 이기대 쪽 피톤치드는 월등하게 높게 나왔다

알려진 대로 피톤치드란 식물이 만드는 생리활성물질 또는 식물체에서 자위 수단으로 방출하는 살균성을 가진 

휘발성 물질이다

향균작용과 식물생장을 제어하며 사람에게는 근육통이나 감기 정신피로 혈액순환 스트레스 해소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기대도 오랜 세월 군사작전지역으로 묶여있어서 살아생전엔 그 속살을 만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랬던 이기대가 냉전이 끝나자 열렸고 비무장지대처럼 긴 세월 동안 온전히 보존했기 때문에 자연생태계를 

비롯한 비경이 고스란히 살아남았던 것이다

二妓臺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을 쳐들어와 축하잔치를 열었을 때 왜장에게 술을 잔뜩 권한 후 

그 왜장과 함께 바닷물에 몸을 던진 두 기생이 이곳에 잠들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과 동해안 관광지도에 자주 등장하는 해파랑길은 동해안에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동해바다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이다.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를 잇는 770킬로미터 광역탐방로를 이른다

또한 부산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며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해안길 강변길 숲길 도심길 등 9개 코스 

270여 킬로미터는 부산갈맷길로 이곳 이기대 산책로도 여기에 든다

오늘 갈맷길에서 만난 탐방객 중 10여명이 넘는 단체는 딱 한 팀이고 나머진 대부분 친구와 연인 부부가 동행한 경우였다.


드물게는 젊은 외국인 남녀가 홀로 또는 둘이 카메라를 들거나 개를 몰고 나타나기도 했다

멀리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리나시티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카메라에 담기엔 너무 멀었다

피다가 말라버린 동백꽃도 보인다. 따뜻한 남쪽지방 기후만 믿고 너무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던 것. 

인간사에도 이런 불상사는 드물지 않지만 마음은 애잔했다. 

남해안에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동백이 가요곡 '동백아가씨'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두 사람 다 먼 길 떠났지만 노래는 부산 사람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솔밭쉼터에서 해변산책로 걷기를 멈추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이기대순환로에 올라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힘들어하는 아내 때문이었지만 마침 어스름도 내리고 있었다

반시간이 지나도록 버스가 오질 않기에 자세히 살피니 주말과 공휴일만 운행한다는 안내글자가 작게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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