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요강
한 밤중에 윗목 방구석에 놓인 요강에 시원하게 방뇨하던 기억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다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요강이 없었다면
요즈음 같이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다말고 소변이 마려우면 뒷간 까지 가려면 깜깜하기도 하고, 겨울이면 춥기도 할 뿐더러 무섭기도 하고, 귀챦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니 요강이란게 있어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훌륭
했었음을 느끼게 된다. 마당에 함박눈이 쌓이던 그 춥고 긴 겨울
밤이면 더욱 요긴한게 요강이었다. 이동용 실내변기로서의 가치가 대단했다.
요즘이야 오강인지 요강인지 조차 모르며 살지만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시집 갈 때 놋 요강이 빠지면 ‘반쪽 혼수’ 라며 실쭉거릴 정도로 요긴한 혼수였다. 혼인 해 신행길 각시의 가마속에 으레 자리잡고
있던것도 바로 요강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몰래 요강속에 앉혀 둔
목화씨는 참으로 그윽한 모정의 징표다.
가마탄 색시가 밖에는 가마꾼들이 있는데 좔좔 소리내며 오줌을
눌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요강속의 목화씨는 그 소리를 죽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옛말에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방에 몰래 큼지막한 질그릇 하나 숨겨들여와 밤새 뒷간 드나드는 수고를 덜었으니, 이 얼마나 은근하고 천연덕스러운 지혜인가?
요강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 않다.
염치가 중했던 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쪽에 엎어두지만 저녁의 부엌 일 마친 어머니는 요강단지를 방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난다. 바로 뼈빠지는 노동의 끝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강이야 말로 가장 솔직하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가정의 필수품이다. 자식들과 부모의 것이 뒤섞여 농작물의 거름이 되고, 오줌을 받아내는 요강이야 말로 우리가 자랑하는 가족애의 시작과 끝이다.
깜깜한 밤 고의춤을 비집고 요강단지를 달랑 드시는 아버지, 궁둥이 까고 앉는 어머니의 '좔좔' 소리가 애들에게는 꿈결에 듣는 소리지만 거기에는 격식없는 진솔한 믿음과 신뢰가 배어있는 혈육의 호패가
됐던 것이다.
옛날 양반들 유기에 백자·청자는 물론 오동나무통에 옻칠까지 해서 썼는가 하면 전담 머슴까지 뒀다지만 지린 오줌 누기는 매한가지
였으니 양반 상놈이 따로 없는게 바로 요강이다.
그런 요강이 사라지고, 이제는 화장실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게 현대식이 됐다. 하나, 두개, 심지어는 세개 있는 집도 있어 요강을 부실(딱는) 일도, 오줌 버릴 일도 없다. 참으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