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韓國)에서는 삼국기(三國期)에 반가사유(半跏思惟)
형식의 불상이
유행하였는데,
이 불상은 그 중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반가상(半跏像)(국보(國寶) 제83호)과
더불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國寶 79호
경주 구황리 금제 여래좌상

통일신라 성덕왕
5년(706)에 사리함 속에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아닌가
추측된다.
國寶 80호
경주구황리금제여래입상
慶州九黃里
金製 如來立像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연화대좌(蓮華臺座)에
푸른 녹이 있을 뿐 광배와 온몸에는 금빛이
찬란하다.
제작은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년(706)이다
國寶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조각수법으로 보아
국보(國寶) 제78호 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三國) 말기의 제작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國寶
85호
금동신묘명삼존불
金銅
辛卯銘三尊佛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현존하는 금동
일광삼존(一光三尊) 형식의 불상 중 가장 크고,조상(造像) 연대는
광배 명문(銘文)에 나타난 인명(人名)이나 조상양식으로 보아
고구려불(高句麗佛)로 보여지며,
'신묘(辛卯)'는
평원왕(平原王) 13년 북제 무평(北齊 武平)
2년, 571)으로 추정되고 있다
國寶
118호 금동 미륵 반가상
1944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공사를 하던 중
출토된 작은 보살상으로 높이
17.5㎝이다.
이 보살상으로 고구려의 예를 확인할 수 있어
주목된다.
國寶
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고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옛 신라 지역인 경상남도 의령지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전체 높이는 16.2㎝이다.
國寶
127호 삼양동금동관음보살입상
國寶184호 금동보살
입상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3호)과 함께
출토되었다.
國寶
200호 금동보살입상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불상은
정면을 향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금동보살상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작품이다.
國寶
293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
197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하나의
관음보살입상과 함께 발견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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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72호
금동계미명삼존불
金銅癸未銘三尊佛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제작은 백제(百濟)
위덕왕(威德王) 10년(북제(北齊)
하청(河淸) 2년,
563)으로 추정되고 있다
國寶
73호
금동삼존불감
金銅三尊佛龕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불감(佛龕)이란 원래 호지불(護持佛)을 봉안하기 위하여
불당건축을 작게
모작(模作)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감은 여기에
봉안된 불상과 아울러
공예와 조각 양면으로
조형미를 고찰하는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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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4호 석굴암 석굴 (石窟庵 石窟)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석굴암(石窟庵)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0년(751) 당시의 재상(宰相)인
김대성(金大城)에
의해서 창건(創建)되었다고 전한다.
석굴암(石窟庵)의
조각(彫刻)들은 심오(深奧)한 믿음과 우아(優雅)한 솜씨가
조화(造化)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가장 뛰어난 세계적(世界的)인
걸작(傑作)으로
한국불교예술(韓國佛敎藝術)의 대표작(代表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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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7호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 좌상
(佛國寺 金銅阿彌陀如來 坐像)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국사 극락전(極樂殿)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높이 166㎝로 이
상(像)은 전체적으로 장중한 모습이며
신체나 옷주름도 비교적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하였다.
불상은 조성연대가 국보
제26호와 거의 비슷한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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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瑞山磨崖三尊佛像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제작시기는
6세기말이나 7세기초로 보인다.
특히 이곳은 백제시대 중국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걸작의 불상이라 하겠다.